나는 마치 내 모든 것이 눈물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 눈물이 많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울고, 신문을 읽다가 슬픈 기사를 봐도 울고, 울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물론 웃음도 많다. 이처럼 내 감정은 예민하고 진폭이 크다.
옷을 만들면서 느끼는 이런 감정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마치 누군가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싶고, 향기로운 차를 나누어 마시고 싶듯, 사람들과 아름다운 감정을 나누고 싶다.
내년이면 디자이너가 된지 30년이 된다. 그리고 85년에 '이상봉'이란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를 시작했으니까 브랜드를 시작한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나의 생각들을 한번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그간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나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패션은 누군가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는 것
디자이너로 데뷔할 무렵인 초기엔 에스닉(ethnic)에 심취해 동양, 아프리카 등 민속적인 것이나 종교적인 의상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었다. 그리고 다음엔 펑키와 스트리트, 테크노에서 영향을 받아 매번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자들은 인터뷰에서 가끔씩 '이상봉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묻곤 하지만, 내겐 어쩌면 '무엇'이라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고착된 스타일 보다 내가 지금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있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것에 대해 감동을 받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서 디자인적인 호기심과 영감은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다. 사진작가의 작품집이나 서적, 현대 화가의 작품 등 이것저것 다양하게 보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나 연극, 뮤지컬도 좋아하고 벼룩시장이나 인사동을 돌아다니면서도 찰나의 영감을 얻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바람이고 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릇에 따라 언제나 담긴 모양이 바뀌는 물이나,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바람처럼 내 정신과 영혼, 스타일도 자유롭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패션을 통해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최소 일 년에 두 번은 쇼를 통해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되는 디자이너에게 매번 변화를 만들어 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도 내가 갈구하는 것만큼 변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였다.
내가 디자이너로 데뷔한지 10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고 깊은 자책의 수렁에 빠진 적이 있었다.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깊은 슬럼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족한 나를 스스로 인정한 다음부터 조금씩 자신감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패션을 통해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나를 사랑하는 일에는 더욱 서툴고 힘들어 한다. 나를 인정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남도 인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철저히 나를 사랑하고 싶다.
무한 상상력 그리고 퍼포먼스
패션쇼는 단순히 옷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패션쇼는 디자이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찰나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이미지다.
쇼를 통해 보여지는 전체적인 이미지가 과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헤어나 메이크업 조명, 음악뿐만 아니라 무대에 비쳐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도 내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나의 모든 생각을 담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퍼포먼스를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이런 나의 쇼를 보면서 나를 더욱 쉽게 이해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자유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란 생각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 자유란 무한 상상력으로 선과 악의 구분까지도 초월한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감정의 충실함도 중요하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된다. 타인의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나'라는 존재의 안과 밖에서 솟아오르는 모든 것들에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에만 진정으로 자유스러울 수가 있다. 패션쇼 역시 내 자신이 원하고 즐기고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내 나이는 37세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은 많다. 나는 디자이너라면 열린 눈, 열린 귀, 열린 가슴, 심지어 몸에 있는 세포까지 다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통해 걸러서 다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누구이고 내 생각은 이러 이러하다'는 정형을 만들지 않는다. 수없이 변화하다가 죽고 싶은 것이 내 진심이다.
내 나이는 언제나 37세이다. 아직도 내 나이가 37세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궁금해 한다. 37세 때 나는 더 이상 나이를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 이 직업을 떠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37세에 머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3과 7을 더한 수의 끝자리인 '제로', 즉, 무(無)의 상태를 좋아한다.
사물이 생성되면서 동시에 소멸되는 '제로'라는 지점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제로는 시작을 위해 '비어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나를 항상 비워라'라는 명제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내 작업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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