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희동으로 이사온 지 만 3년이 지났다. 200여 가구의 단독주택이 밀집된 고즈넉한 동네다. 주민 대다수가 20~30년간 터 잡고 살아온 중ㆍ노년층이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는 가뭄에 콩 나듯 귀하다.
그런데 1년 전 동네 한 켠에 어린이놀이터가 생겼다. 산책하다가 몇 번 들렀지만, 사람이 없어 늘 휑뎅그렁하다. 꼭 필요한지 의심스러운 공사 현장은 이곳만이 아니다. 공터를 깔아뭉개고 아스팔트 도로를 놓는가 했더니, 인접 도로에선 지하 매설물 공사가 한창이다. 연례행사인 보도블록 교체공사도 빠지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인 토건경제 중시
지방도 크고 작은 공사로 야단법석이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아스팔트 도로와 현대식 교량이 들어서고 있다. 일부 민자도로는 이용률이 예상치의 10%대로 저조해 매년 수천 억원의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이용객이 거의 없는 '유령 공항', 공장 없는 '유령 공단'도 부지기수다. 3,600억원이 투입돼 2002년 문을 연 양양국제공항은 하루 이용객이 15명에 불과하지만, 관리 인력은 60명을 넘는다. 경제성을 무시한 채 관료와 토건기업, 지역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 추진된 사업이 많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공공사업 규모가 비대해 '토건국가'로 불린다. 자민당 정권은 1972년 1,100개의 댐과 도로, 철도 건설로 일본 전역을 개조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92~95년엔 경기 진작을 위해 토건산업 위주의 72조원 규모 부양책을 펴기도 했다. 그 결과 이용객이 없는 공항과 항만,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도로와 다리가 넘쳐났다.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해 세금을 탕진하고 재정적자만 누적됐을 뿐, 이렇다 할 고용 창출 효과는 보지 못했다. 늘어난 일자리라야 단순 기능직과 일용직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지난 8월 성장 우선의 토건정책 대신 교육 복지 등 '생활 속의 성장'을 내세운 민주당을 택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업 비중은 8.9%(2007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건설투자액은 GDP의 19%나 된다. 세계 최고의 '토건국가'다. 건설업 비중이 이처럼 크다 보니 건설업의 부침에 따라 경기가 좌우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정부는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대규모 토건사업을 일으켰다. 토건 분야의 과잉성장은 과도한 재정 투자를 유발해 교육과 복지 분야에 필요한 재원 배분을 왜곡한다.
소비성 투자여서 반짝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 성장동력 확충 효과도 떨어진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1970년부터 94년까지 1조원을 건설경기 부양에 투자했을 때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첫 해 0.42%의 성장 효과가 나타났지만 5년 후 -0.01%, 30년 후 -0.31%로 하락했다. 반면 1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첫 해 0.25%의 성장에 이어 5년 후 0.06%, 30년 후 1.54%로 시간이 갈수록 성장 기여도가 높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병적으로 비대해진 국내 건설업을 구조조정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정부는 손쉽게 건설경기 부양을 택했다. 미분양에 시달리는 민간 건설회사에 2조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 부었고, 홍수 예방용 수로를 만드는 굴포천 방수로(放水路) 사업을 총 2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경인운하 사업으로 둔갑시켰다. 올해 초 13조8,000억원 규모로 제시됐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6개월 만에 22조2,000억원 규모로 확대됐고, 연계 사업을 포함하면 30조원이 넘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으로 변모했다.
누굴 위한 건설인지 따져보라
정치인과 관료, 토건기업에게 세금은 '눈먼 돈'일 뿐이다. 중간에 설계 변경 등을 통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대형 공사가 많은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일본 자민당 장기 집권의 한 축을 떠받친 것은 토건기업과의 유착을 통한 부정부패였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과연 누구를 위한 건설이고 성장인가? 토건경제의 번창 속에 우리 삶도 풍요로워졌나?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