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에게 사증(비자)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대사관 영사가 업무수행을 소홀히 해 국내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늘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1ㆍ2심 판결이 엇갈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부장 김필곤)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된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 황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형법 122조(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직무수행을 이유 없이 거부ㆍ유기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직무에 대한 의식적인 포기 없이, 단순히 태만, 착각 등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1심은 황씨가 신청인에 대한 기초조사를 하는 행정원의 의견을 무시하고 비자를 발급해 불법체류자가 생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황씨가 발급한 비자 건수 별로 개별적 판단을 내렸다.
지인의 부탁으로 66명에 대해 비자를 발급한 것에 대해 "연락처도 제대로 기입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 기초조사도 생략한 것은 태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사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고 유죄로 판단했다. 이어 중국 천진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보완도 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로 봤다.
하지만, 항소심도 입증서류를 받지 않은 채 면담만으로 병에 걸린 중국인에게 비자 발급을 해준 행위는 "비록 해당 중국인이 불법체류 중이지만, 인도적 차원의 순수한 마음에 발급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아울러 신분확인서류가 구비돼 있지 않은 중국인에 대해 국내 카지노 회사의 말만 믿고 비자를 발급한 것은 "신분노출을 꺼리는 카지노 관광객들이 허위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다"며 의도적 직무방임으로 보지 않았다.
항소심은 "황씨가 자의적으로 사증을 발급해 71명의 국내불법체류자가 발생한 만큼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나태한 마음에 빠져 범행에 이르게 된 점, 그간 국가에 헌신한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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