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이 7일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 가스를 미국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협하는 오염물로 규정하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한 각국 관계자들은 "이 결정이 코펜하겐 회의에 긍정적인 모멘텀이 될 수 있다"며 한 목소리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번 회의의 성패 여부를 쥐고 있는 미국에게 더욱 책임 있는 감축 노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EPA의 결정은 전임 조지 W 부시 정부와 비교해 버락 오바마 정부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한층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2007년 매사추세츠주 등 미국 내 12개 주정부가 1970년 제정된 대기오염방지법에 따라 EPA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 대법원이 "유해성과 규제 여부는 EPA의 판단에 맡긴다"는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부시 정부는 결정을 차일피일 미뤄왔고 이 문제는 오바마 정부 출범과 함께 재검토에 돌입했다.
각국 대표들은 미국의 결정을 환영했다. 당초 코펜하겐에서는 개막과 동시에 미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유럽의회 환경 담당 대변인인 안드레아스 칼그렌은 "코펜하겐에서 결론이 날 수 있는지는 (세계 2대 탄소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에 달려있다"고 언급하며 압박했다.
래젠드라 파차우리 유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네트워크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 관련 법안이 의회에서 표류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보여줬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이 좀 더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EPA의 결정과 함께 미국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권위를 지니게 되면서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무기를 지닌 셈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온실가스 규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취할 지는 미지수다. EPA가 구속력 있는 규제안을 발표할지,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기후관련 법안 표결을 기다릴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EPA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의회 승인 없이도 기업에 탄소 감축을 명령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 내 환경단체들은 의회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EPA가 규제 주체로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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