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매는 자본시장에서만 빛을 발하는 게 아니다. 개인이나 조직, 정부가 어떤 의사나 정책을 추진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손을 털고 일어서는 게 결과적으로 이익이 된다. 그러나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자본시장에서 선뜻 손절매에 나서지 못하듯, 개인이나 집단은 좀처럼 착수한 정책을 거둬들이지 못한다. 애초에 스스로 결정한 정책의 효율성을 평가할 때부터 부정적 효과는 낮춰 보거나 간과하는 반면 긍정적 효과에 눈길을 빼앗기기 쉽다. 행동경제학이 '결정 후 정당화(post-decision justification)'라고 부르는 인지 왜곡 현상이다.
■이런 뒤틀린 인식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욕구와 곧바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명백한 오류가 눈앞에 드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증으로 굳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런 행동은 '손절매' 시점을 놓쳐 손실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를 덧붙여 손실을 눈덩이처럼 불리기 십상이다. 잘못된 의사결정에 얽매인 결과 오히려 오류를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행동 특성은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집착의 심화(Escalation of Commitment)'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막대한 개발비와 불확실한 시장성에 대한 의문이 잇따랐고, 기체 결함이 잇따라 드러났지만 양국 정부는 이미 들어간 '매몰비용'이 아까워 추가 투자에 매달려 손실을 키웠다. '매몰비용'에 집착해 불확실한 미래로 끌려들어가는 것은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의 설명처럼 100원을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아픔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객관적 승률이 변할 리 없는데도 노름꾼이 많이 잃을수록 본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승률이 높아졌다고 착각하는 것과도 통한다.
■'집착의 심화'로 설명할 수 있는 정책 오류는 허다하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간 것도 이미 치렀던 인적ㆍ물적 비용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퇴각전이 가장 어렵다고 하고, 동양 전래의 병법인 '36계'의 끝이 '달아나는 게 상책(走爲上)'이란 데서도 나아가기보다 물러나기가 어렵다는 이치는 엿보인다. 세종시를 둘러싼 원안 대 수정안의 치열한 공방전도 퇴각의 득실을 따질 때에 이르렀다. '집착의 심화'에 빠지지 말고 현재까지의 손실과 장래의 승산을 냉정히 저울질해야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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