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리스본 조약, 유럽연합(EU) 개정조약이 발효되면서 단일 정치공동체로서 유럽연합이 본격 출발했다. 정치적 통합을 위한 노력과 별도로 유럽 각국의 고등교육 체제를 통합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EU 회원국을 비롯한 45개국이 가입한 볼로냐(Bologna) 협약이 그 것이다.
EU의 고등교육 통합노력
볼로냐 협약은 이미 1980년 대에 기본 구상이 싹텄다. 그러나 오랜 논의를 거쳐 1999년 6월 19일, 서양 최초의 대학이 발원한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유럽 29개국 교육부장관들이 정식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와 개혁안을'볼로냐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협약에 서명한 각국 교육부장관들은 2년 마다 회의를 갖고 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볼로냐 협약의 목표는 유럽 국가 내의 학술 교류의 증대,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 고용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쉽게 이해되고 비교 가능한 졸업제도(Diploma Supplement)를 도입함으로써 동질적인 고등교육 제도를 확립한다. 학사-석사 두 단계 학위 제도로 단순화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유럽 학점교류시스템(ECTS)과 같은 표준적인 학점 제도를 도입하여 제반 장벽을 철폐함으로써 자유로운 학술교류를 보장한다. 이는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문화 및 학생 교류와 평생교육 차원에서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함을 의미한다.
셋째, 학생선발의 인증을 통한 고등교육의 질 제고를 위해 유럽 차원에서 공동 작업을 추진한다. 넷째, 유럽 전체 차원에서 고등교육을 포함한 평생교육 체제를 확립하고, 고등교육기관의 유기적 결합을 촉진한다. 특히 박사과정의 체계적인 분화를 통해 국가 간 유기적인 연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결국 볼로냐 협약의 목표는 고등교육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의 통합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 프로세스를 실행은 2010년까지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이 협약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데 교육정책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협약 추진에 1차적 동력은 물론 유럽통합이라는 오래된 역사적 과정이지만, 또 다른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체제의 과점(寡占) 상황에 유럽 대학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현실적 요구였다.
전통적인 대학 이념과 운영 모델을 간직하고 있는 유럽 대학은 1990년대 이후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우선 고등교육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미국식 대학 운영과 달리, 유럽 대학들은 여전히 고등교육의 기회균등 보장이라는 오래된 담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등교육 내적인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인재유출(brain drain)로 인한 산학연(産學硏) 연계체제의 붕괴 위기를 겪고 있다. 볼로냐 협약의 세부 목표에 들어 있는 '고등교육 체제의 매력도 증진'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대학이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등교육 체제통합을 통해 어떠한 성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비유럽권 관심도 높아
비유럽권이지만 유럽의 고등교육 전통과 관계가 깊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도 볼로냐 협약에 관심을 갖고 각기 자국의 고등교육 체제를 점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들 국가들이 국제 고등교육 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선제적으로 제도적인 의제설정에 나섰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대처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와 유럽 국가 사이의 학위 상호인정, 학생교류, 연구 및 기술교류 등이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단일 정치공동체로서 유럽연합은 여전히 미국에 버금가는 실체임에 틀림없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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