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부터 온실가스 감축 등 지구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세계 정상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이슈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물 문제다. 많은 과학자와 수자원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세계적 차원의 물부족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구 온난화로 고산이나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내리면 대부분 바다로 흘러 들어가 수자원 고갈로 이어진다. 빙하는 형성됐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인류에게 막대한 물을 공급해 왔으나 빙하의 절대량이 감소하면 그만큼 사용 가능한 물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물 부족 해결 방안을 코펜하겐의 의제에 포함시켜서 기후변화와 연관 지어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코 앞에 닥친 물 부족 문제
물 문제는 수도 시설을 갖춘 도시인도 피해갈 수 없다. 3일 인도 뭄바이에서는 시민 5,000여명이 시 당국의 물 공급 축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난 몬순 당시 강우량이 충분치 않자 뭄바이시가 물 공급을 최대 30%까지 축소한 데 따른 것이다. 지구온난화, 인구 증가 등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 베이징시는 최근 물 가격을 최대 25% 인상키로 해 시민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녹아 내리는 빙하 때문에 히말라야 산맥 인근 국가와 북미 서부 지역이 심각한 물 부족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10년간 히말라야의 평균 기온이 0.6도 상승한 결과 이 지역의 빙하는 대량으로 녹아 내리고 있다. 이 현상이 계속되면 히말라야를 수원으로 하는 갠지스, 인더스, 양쯔, 황하, 메콩강 등 아시아 내 10개 거대 강에는 물이 마르고 이 강물을 생활용수로 쓰는 13억 아시아인의 삶도 위태로워진다.
로키산맥 빙하를 주 수원으로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역시 심각한 물부족 사태가 예상된다. 최근 맥킨지보고서는 "2030년께 세계 물 공급은 수요의 60%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라며 "가뭄으로 동아프리카는 황폐해지고 캘리포니아의 물 가격은 폭등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 문제 코펜하겐에서 논의되어야
물 문제는 인류의 존속과 직결돼 있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357만5,000명이 물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이 중 84%는 0~14세 어린이다. 전 세계 인구 8분의 1에 해당하는 8억8,400명은 아직도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물 부족은 농업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미쳐 식량 대란을 부를 수 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향후 40년간 벼농사 생산은 8%, 밀농사는 3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생물 다양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으로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이 나라 고원 지역의 대규모 개간이 강의 수원지 소실을 낳았고, 산호가 멸종하는 등 심각한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코펜하겐에서 물 문제를 빠뜨리지 말 것을 주장한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하는 물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인터내셔널 수자원 연구소의 앤더스 베른텔 소장은 7일 영국 텔레그라프에 "물 문제는 기후협상에서 합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효과적 협약을 위해서는 물 문제가 인류 공영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주도국이 사안의 복잡함 때문에 물 문제를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 문제를 다룬 저서 <하트 오브 드라이니스> 의 저자인 제임스 워크맨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코펜하겐 의제에서 물 부족을 삭제한 것은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3일 "물 문제의 복잡함 때문에 코펜하겐에서 논의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물 문제는 농민과 도시, 개발ㆍ환경론자들 간의 의견조율이 필요한 정치적인 지뢰밭"이라고 말했다. 하트>
최지향기자 jhchoi@hk.co.kr
■ 바닷물을 식수로… '海水 처리' 급부상
물의 총량은 비교적 충분하다. 하지만 염분이 높거나 오염된 물이 많아 인류가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전체의 2.5%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 대부분이 북극과 남극의 빙하 형태라 결국 깨끗한 물은 전체 수자원의 1%도 안 된다. 올 3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 물 포럼에서는 인류가 먹고 마실 수 있는 수자원 부족이 중요 의제로 집중 논의됐다.
환경 전문가들은 수자원 부족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며 산업 전반의 생산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수자원관리연구소(IWMI)도 "물 대란이 예상되는 2050년 이전에 물 소비가 많은 농업 등 식량 생산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 부족 국가들이 미래에 수요와 공급의 격차 때문에 심각한 재정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인 인도의 경우 2030년 물 수요 예상치는 1조5,000억㎥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인도의 물 공급은 7,400억㎥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물을 얻기 위해 드는 비용은 1㎥ 당 0.1달러 이하지만 비싼 경우 1㎥ 당 0.5달러가 소요된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보고서는 인도 외에도 중국, 남아프리카, 브라질 상파울로가 물의 수요와 공급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바닷물을 이용한 담수화 작업이 물 부족을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담수화 공장에서는 연간 1억㎥의 해수를 식수로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가 3년 내에 수도 리야드에 전기와 물을 공급할 세계 최대 규모의 전력ㆍ담수시설을 짓겠다고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사우디 담수청은 초기 비용만으로 90억달러가 드는 이 전력ㆍ담수 프로젝트를 3년 내에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 "고갈되는 물을 사수하라" 피 부르는 갈등
2007년 수단 다르푸르 내전 시초로 이-팔-요르단 등 국제 분쟁 확산
지난 2007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희생자 20만명과 난민 250만명을 낳은 수단 다르푸르 내전을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분쟁"이라고 평가했다.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은 잔자위드 민병대가 다르푸르 토착민을 쫓아낸 이유가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도시화 등으로 갈수록 고갈되는 물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국제분쟁을 양산하는 요인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집트가 세계 최장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해 강물을 차단하려 하자 유역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는 리오그란데 강물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은 메콩강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개국 이상 걸쳐 있는 국제하천이 50개국 241개에 이르며, 세계 인구의 40%가 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분석한다.
가장 최근 중국은 신장성 개발을 위해 자국에서 시작되는 이르티시강을 개발키로 했다. 이에 강하류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러시아가 반발하며 '초국경하천과 국제호수의 보호와 사용에 관한 헬싱키 협약'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이 협약에 서명한 나라는 카자흐스탄뿐이어서 중국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해결책이 요원하다는 얘기다. 인더스강 평화적 이용에 합의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는 극히 드문 예다.
물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세계 인구 3분의 1이 물 부족에 시달렸고 2050년엔 93억명으로 추산되는 인구 중 70억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 물 분쟁이 있었던 곳에선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사막지대가 많은 중동지역은 수자원 확보를 위한 분쟁이 가장 심각했다. 특히 요르단강을 둘러싼 이스라엘,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는 시리아와 위기의식을 느낀 이스라엘간 '물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최근엔 팔레스타인 곳곳의 유태인 정착촌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등의 지하수 대부분을 사용, 반발을 부르고 있다. 터키는 1998년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산유국이 원유를 무기로 삼으면 터키는 물을 무기화할 것"이라 말해, 시리아와 갈등을 야기했다. 미 UPI통신은 지난달 전문가의 말을 인용, "이스라엘이 물을 얻기 위해 조만간 레바논, 이집트 등 인접국과도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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