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학계의 색채는 민중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이 개념이 더러 실증적이어야 할 연구 대상의 선험적 전제로 기능한 것도 사실이다. 역사학계도 마찬가지였다.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의해 구조적으로 주어진 본질적 실체'로 민중을 인식하거나 민중을 근대의 주체로 설정해 역사를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협애한 관점이 여기서 기인했다.
이처럼 근대의 틀 속에 갇힌 민중사를 '근대 비판'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하는 학술대회 '경계에 선 민중, 새로운 민중사를 향하여'가 역사문제연구소 주최로 5일 성균관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민중을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 실체와 담론의 경계, 지배와 자율의 경계에 위치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과거 단일한 실체로 인식됐던 민중 개념의 해체를 모색했다.
허 수 한림대 교수는 기존 민중사에 대해 "민중을 투쟁하는 주체로 고착화했으며 '민중의 실천'을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 및 갱신에 수렴되는 것으로 형상화한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쓰인 식민지 시기를 되짚으며 "1920년대 이후 민중 개념을 사용한 지식인들은 민족적, 계급적 프리즘 너머 '민중들'의 실체를 포괄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배성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민중사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피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역사학 외부를 지향했다"고 파악했다. 그는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민중사학이 비판의 기능을 상실했다"며 '역사학 비판'으로서 민중사의 방향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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