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관계가 심상치 않다. 9월 출범한 일본 하토야마(鳩山) 민주당 정부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추구를 천명했을 때는 표면적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대 현안인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미군비행장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양국간 갈등은 실제적 '위기 상황'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은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 고압적 자세로 전 자민당 정권 때 이뤄진 기존 합의의 이행을 압박하고 있고 일본은 최종 결론을 유보한 채 뚜렷한 방향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조기 결론을 위한 장관급 작업그룹을 설치할 때만해도 일단 봉합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 등이 연립정권에 참여한 사민당의 반발과 오키나와 주민의 현외 이전 요구 등을 고려, 연내 결정을 미루면서 미국의 불만은 증폭됐다. 양국간 냉기류는 급기야 양국의 전반적 외교관계에서의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7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달 초 지구온난화 문제 협의를 위해 주요국 정상에게 전화를 했지만 일본은 대상에서 뺐다. 또 비행장 문제의 조기 결론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미국을 방문한 민주당 정부 외교 브레인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을 국무부 현직 관료가 만나주지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신문은 미국에서 하토야마 정권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앞서 존 루스 주일 미국대사는 4일 열린 미일 작업그룹 회의에서 하토야마 정부의 불성실한 대응이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에 얼마나 먹칠을 했는가라는 취지의 말들을 쏟아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보도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평소 온화한 루스 대사가 이 자리에서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큰 소리를 질렀다고 전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무장관 입에서 "미일 동맹에 강한 위기감을 느낀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배경이다. 미국의 조기결론 집착은 후텐마 기지 이전과 연계된 주일 해병대 괌 이전 예산을 연내에 의회에서 심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미 갈등은 하토야마 정부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의 4~6일 여론조사에서 내각지지율은 59%로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언론 조사로는 처음 50%대로 떨어졌다. '총리의 지도력이 없다'는 응답은 27%로 한달 전 보다 10%포인트 늘었다.
결국 하토야마 총리는 7일 기자들과 만나 18일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동회의까지는 일본 정부의 생각을 미국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전달 내용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전지라고는 할 수 없다"며 이전지를 결정하지 않고 미국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내년 1월24일 후텐마 이전예정지인 나고(名護)시장 선거 결과를 명분 삼아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주변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시간 끌다 결국 둘 다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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