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은 처음 만난 최지우가 못마땅하다. 선배인 자신에게 데면데면하고, 분장실도 함께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류스타라고 콧대를 세우려는 듯해 영 마뜩하지 않다. 결국 날 선 한마디를 던진다. "넌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쌍둥이 별자리라 좋겠다."
참다 못해 최지우가 반격한다. "(성질이) 그러니까 (재벌가 시집에서) 쫓겨나지." 순간 스크린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슬쩍 흔들리는 카메라와 거친 입자의 화면, 어두운 조명이 긴장의 강도를 더한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진심일까. 영화 '여배우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의 외피를 지녔지만 이 영화, 굳이 정의하자면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가짜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영화는 배우들의 기본 정보와 성향을 바탕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스크린이 품은 내용이 사실이면서 동시에 거짓인 것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롭고 새롭다.
20~60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6명이 패션잡지 화보를 찍는 자리에서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과 일상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영화는 이야기를 구축한다. 윤여정은 "그 못생긴 놈한테 채였다"며 자신의 이혼담을 거침없이 털어놓고, 고현정은 "이영애와 (김)혜수 언니를 누르고 싶다"며 열등감을 토로한다. "이혼이 무슨 죄냐"(고현정)고 항변하는가 하면 "이혼은 여전히 주홍글씨"(이미숙)라며 눈물을 떨구기도 한다. 김옥빈은 "선생님 선생님"하며 나이든 선배들에 공경을 표하면서도 정작 윤여정과 여운계를 분간하지 못한다.
여배우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려 안간힘을 쓰고, 서로의 단점과 조바심을 들키지 않으려 눈치 본다. 우리가 아는 여배우들의 진한 화장기가 지워지고 맨 얼굴이 스크린을 채운다. 여배우도 평범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당혹스럽지만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재용 감독은 "시놉시스 정도만 만들고 대부분의 연기를 배우에게 맡겼다"며 "정해진 악보를 그대로 따라가는 클래식이 아닌, 즉흥성을 즐기는 재즈 같은 영화"라고 밝혔다.
이미숙은 영화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배우가 가식이 없으면 안 되지." 여배우의 태생적 가식을 감안하고 봐야 할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다큐멘터리라고 관객을 향해 충고하는 것으로 들린다. 10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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