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동의 새벽> 으로 19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던 시인 박노해(52)씨. 19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98년 풀려난 박씨는 그 후 10년 동안 중동의 분쟁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터키 등에서 그가 찍은 사진이 무려 4만 장에 달한다. 노동의>
2010년 1월 7~28일 서울 중구 저동의 갤러리 M에서 첫 사진전'라 광야'를 여는 박씨는 7일 서울 신문로 나눔문화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분쟁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시가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고 르포 사진가로 변신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씨가 중동의 분쟁지역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99년 떠난 첫 유럽여행이다. 당시 쿠르드족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의 구속에 유럽 전역의 쿠르드족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중동의 분쟁현장을 찾기로 했다. 폭격에서 살아 남은 레바논 소녀, 전사한 형의 사진 앞에서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어린 형제, 고향에서 쫓겨나 홀로 길을 떠나는 팔레스타인 여인 등 전시 사진 37장은, 박씨의 표현을 빌자면, '한 장 한 장에 단편소설 분량의 사연이 담겨 있는'작품들이다. "갈 때마다 그곳 어린이들에게 '삶이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었고 그 때마다 '죽지 않고 사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는 박씨는"무장력이 집중돼 있고 긴장감이 높다는 점에서 중동과 우리는 고통의 동심원을 그리는 지역"이라며 사진전 개최 의미를 설명했다.
"한 손에 카메라를, 다른 손에 만년필을 들고 보냈던 시절"이라고 지난 10년을 되돌아본 박씨는 "발표하지 못한 시가 4,000편이 넘는데 내년 가을쯤 시집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전 제목인 '라 광야'에서'라'는 아랍어로'태양'을 뜻한다. 갤러리 측은 중동을 '문명의 시원'으로 주목한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02)2277-2438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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