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의 영화가 10일 어깨동무하며 개봉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이 잉태하고 출산한 형제자매 영화들이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 '너와 나의 21세기' '여자 없는 세상' '로망은 없다'가 그 주인공들. 영화학도들의 젊은 시선과 재기가 번득인다. 난형난제 속에서도 '나는 곤경에 처했다!'와 '너와 나의 21세기'가 돋보인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의 소상민 감독의 말을 전하고 '너와 나의 21세기'를 소개한다.
20세기 초 한 소설가는 '청춘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고 했다. '인생의 황금시대'라고도 했다. 그 누가 약동하는 청춘의 에너지를 부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지금 이곳의 청춘은 과연 장밋빛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영화 '너와 나의 21세기'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일종의 '청춘 묵시록'이라 할 이 영화는 이 시대의 젊음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온다고, 건조하고 차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현실을 습자지로 옮긴 듯한 영화 속 청춘은 비루하다. 생계를 위해 신약 실험의 마루타를 자처하고,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마다 않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사채업을 하고, 거리에서 물건을 판다. 아트바이트 하는 곳에서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 돈 앞에선 사랑도 무의미하다. 남자는 일년 이상 동거한 여자친구가 지방흡입수술을 하려고 부정하게 모은 목돈을 훔쳐 잠적한다. 등장인물은 생존을 위해선 피 묻은 돈도 큰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 넣는다.
그렇게 영화 속 청춘은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청춘을 곤경에 밀어 넣는다. 하지만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랴.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즐겨 찾기'에 취업 관련 사이트가 그득한 그들의 씁쓸한 삶을 이 사회가 만들지 않았나. 번듯한 직장이라는,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꿈을 애써 끌어안으려는 그들이 오히려 안쓰럽기만 하다.
영화는 잿빛 청춘에 동정을 베풀려 하지도 않고,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섣불리 높이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사회의 마이너 리그에서 처절하게 서로를 물어뜯으며 하루하루를 소진하는 청춘 군상을 묵묵히 바라본다. 인생을 쉬 낙관하지도, 좌절한 청춘에 근거 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려고도 하지 않는 냉랭한 태도가 진솔하기만 하다. 이 영화가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류형기 감독, 한수연 이환 주연.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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