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 녹취록 'X파일'에 등장하는 '삼성 떡값 검사'7명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의혹에만 그쳤던 삼성의 금품 살포와 검찰수사의 부당함을 법원이 간접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이민영)는 4일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노 대표에게 무죄 및 공소기각 판결했다. 1심은 노 대표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우선 금품제공 대상으로 지목된 검사 이름을 실명으로 적시해 보도자료로 만든 행위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인지에 대해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X파일의 대화 당사자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사이에 '지검장'이라는 대화가 오갔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안강민(현 변호사)이었다는 것은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검사 7명의 금품수수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받은 것으로 단정한 것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삼성이 검사들에게 금품을 지급했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추정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하죠, 연말에 또 하고…'라는 이 전 부회장과 홍 회장이 나눈 대화를 지목했다.
재판부는 또 노 대표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검찰논리를 배척하고 이 혐의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노 대표가 떡값 검사 보도자료를 배포한 장소가 의원회관이고, 법제사법위원회 개의 직전에 한 것이어서, 이는 직무상 행한 발언에 부수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45조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선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발언 범위에 대해선 구체적 행위와 목적, 장소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재판부는 이런 판례에 비춰 "수사기관이 의원의 직무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조사하는 것은 헌법 취지와 정신에 어긋난다"며 무리한 기소를 질타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노 대표가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게재한 행위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삼성이 조직적으로 검사들에게 금품전달을 계획하고 있어, 당시 의원인 노 대표가 수사 촉구 등 정당한 목적을 위해 인터넷에 게재한 것"이라며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부실한 검찰 수사를 지적했다. 떡값 검사들이 삼성의 금품을 받지 않았는지 입증하지도 않았고, X파일의 대화 당사자인 이 전 부회장과 홍 회장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고소인인 안강민 변호사만 한 차례 조사했을 뿐 다른 관련자 수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기소 후에도 검찰은 이런 입증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 대표가 이 전 부회장과 홍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검찰의 편향성을 꼬집었다.
선고 직후 노 대표는 "사필귀정"이라며 "법원이 X파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명백한 법리 오해"라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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