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 지음/돌베개 발행ㆍ432쪽ㆍ1만8,000원
책머리에 '희망 없는 빈곤'이라는 수식 구조에 대한 못마땅한 심기가 드러난다. 옮겨보자. "희망이 나의 내밀한 삶의 세계에서 비롯된다면 빈곤은 경제적인 생존을 규제하는 바깥 세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희망 없는 빈곤'이란 말은 빈곤을 나의 책임과 자율의 세계로 떠넘기며, 빈곤을 낳은 원인을 용케 나에게 돌린다."
이 책은 위의 관제 수식 어구처럼 용케 비판의식의 과녁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 사회의 비틀린 구조, 또는 은폐(혹은 집단적으로 망각)된 진실을 파헤친다. 저자는 계간 리뷰와 당대비평 등의 편집장을 지낸 사회학자 서동진씨. 그의 메스를 받은 대한민국은 탁한 내장을 쏟아내고야 마는데, 비교적 멀쩡한 외양과 달리 그 오장육부는 누린내를 풍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몰각(沒覺)의 현실은 자기계발이라는, 대부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기 경영'의 한 측면이다.
서씨는 자기계발에 대한 열풍이 실은 신자유주의적 사회 시스템의 효율화를 위한 일종의 윤활제 같은 것이라고 간파한다. 자신의 '스펙'을 '업그레이드'하며 남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어가는데 왜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면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 자기계발이라는 강박 속에 유통되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의 '자기'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이 담겼다.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란 좁은 의미의 경제학 담론이 아니다. 저자는 사회, 정치, 행정, 교육, 문화 등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총괄 조직하는 '새로운 합리성'으로 신자유주의를 파악한다. 그 '합리성'이 "기계 부품 같은 존재를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교묘하게 합치된 것이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 이 서글픈 아이러니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새로운 자유의 이미지를 고안"하자고 이 책은 제안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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