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에서는 하이데거의 시론 등 신선한 소재를 찾으려는 출판사들의 안목이 돋보였다. 이론적 불모지로 여겨졌던 보수주의의 경전으로 꼽히는 저작, 시장만능주의에 정교한 비판을 가한 저술 등 한국사회의 고민거리와 닿아있는 책들도 눈에 띄었다.
■ 거대한 전환
홍기빈 옮김
시장이 국가와 세계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는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그 근원이 되는 사회를 인정하자는 논리로 마르크스와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좌우 두 논리의 극복을 시도한다. 제목은 19세기 현실에 대한 비유이지만 21세기를 이해하는 데도 유효하다. 칼 폴라니 지음. 길 발행.
■ 시대의 초상
윤정임 옮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동시대 작가, 예술가에 대한 비평을 엮은 책. ‘작품이란 작가 개인을 통째 드러내는 중요한 징후’라고 파악하는 그의 비평적 관점과 예술론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전체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생각의나무 발행.
■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진형준 옮김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에두아르 쉬레가 ‘신비주의’로 불리는 종교의 역사를 꿰뚫는다. 플라톤과 예수, 크리슈나 등 현인 8명의 삶의 행적과 정신을 추적하며 이들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가장 드높은 상태로까지 고양시키고 사회를 훌륭하게 조직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사문난적 발행.
■ 완역 이옥 전집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형이상학적 문학론을 유지하려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굴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의 비범한 아웃사이더 이옥의 모든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인정과 풍물을 묘사하는 소품문(小品文)에 특별히 애정을 기울였던 그의 글은‘근대적 개인의 자기각성’이라는 지성사적 변화를 이해하게 한다. 휴머니스트 발행.
■ 일본영대장
정형 옮김
일본 에도 시대의 대표적 소설가 이하라 사이카쿠가 지은 경제소설. 30개의 단편에 ‘조닌’이라는 도시 상인의 출세담과 파멸담을 담고 있다. 인간의 물욕이라는 주제를 사실적 기법으로 드러내 일본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며, 근세 일본의 사회경제사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소명출판 발행.
■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세훈 옮김
영국의 정치경제사학자가 지은 케인스 전기의 결정판. 케인스의 주요 이론서와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쓰인 글들을 소개하고 거기 대한 케인스의 자기비판까지 보여준다. 저자의 시각은 “이성이 죽으면 괴물이 태어난다”는 케인스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후마니타스 발행.
■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이태숙 옮김
18세기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추적하면서 혁명 원리의 오류를 밝히고 그것이 폭력적으로 전개될 위험성을 경고한 책. 보수주의가 혁명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세력을 얻는다는 저자의 통찰은, 한국의 보수주의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한길사 발행.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김도형 옮김
근대의 대표적 민족주의 역사학자인 박은식의 사상을 집대성한 독립운동사. 힘에 의해 일본에 병탄됐지만 종교와 역사, 언어와 문자, 풍속에 깃든 ‘국혼’만 없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독립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전개하는 그는 3ㆍ1운동을 ‘세계혁명사의 신기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소명출판 발행.
■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김학이 옮김
유대인 학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추적했다. 유대인인 저자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료에 접근한 점이 객관성을 높인다.“학살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이 축적해온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라울 힐베르크 지음. 개마고원 발행.
■ 횔덜린 시의 해명
신상희 옮김
20세기의 사상가 마르틴 하이데거가 쓴 독일 낭만주의 시인 횔덜린에 대한 시론. 하이데거의 사유 구조는 예술과 시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다. 훨덜린의 시를 읽으며 사유와 시작(詩作)의 관계를 고찰하고 신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정교한 사유체계를 구축한 사상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아카넷 발행.
정리=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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