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사코 혼자 앓겠다는 사람 옆에 있다'(이병률의 시 '자상한 시간'에서)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극장 씨어터제로. 19명의 시인들이 무대에 섰다. 서울 대전 전주 울산 제주 등등 사는 곳도 모두 다르고, 최고참 김백겸(56)시인과 막내 김성규(32) 시인은 아버지와 아들뻘쯤 나이 차이가 난다. 언뜻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지만 이들은 1984년 결성돼 국내 시 동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힘' 동인들이었다. 이날 행사는 동인 결성 25주년 기념 시 낭송회 겸 시선집 <세상의 기척들 다시 쓰다> (북인 발행ㆍ사진)의 출판기념회였다. 세상의>
"이름을 가졌으니 100년을 넉넉히 사는 느티나무로 우뚝 서고 싶다"는 정일근 시인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는 휘민 시인의 시를 담은 영상물 상영, 최영철 시인의 시를 가사로 만든 랩 공연과 박형준 문태준 시인의 대담 등으로 이어졌다. 선화예중 3학년 학생들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자신의 시 '배추의 마음'에 곡을 붙인 가곡을 노래하는 깜짝공연을 펼치자 나희덕 시인은 "귀엽다, 색다르다"를 연발했고 행사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시힘' 이 탄생했던 1980년대 초반은 군사정권에 의해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 의 문예지들이 강제 폐간됐던 때였다. 시인들은 '열린시' '시운동' '오월시' 등 백가쟁명식 동인 활동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뚜렷한 지향성을 가진 다른 동인들과 달리 '시힘'의 시작은 소박했다. 1983년 등단한 고운기 시인이 같은 해 등단한 김백겸, 이듬해 등단한 정일근 시인 등과 '역사적 서정성을 지향하는 동인'을 제안한 것이 계기.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시적 목표가 도그마로 전락되거나, 동인이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동인을 영입하는 기준도 느슨했다. "화려하게 자리잡은 시인보다는 첫 시집을 내지 않은 시인이라도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이를 뽑자. 인간성도 보자"는 것이 이들이 내세운 기준. 그렇게 모인 동인들은 1기(1980년대 등단) 고운기 김경미 김백겸 박철 안도현 양애경 정일근 최영철, 2기(1990년대) 김선우 김수영 나희덕 문태준 박형준 이대흠 이병률 이윤학, 3기(2000년대) 김성규 김윤이 휘민 시인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낸 시집을 합치면 100권을 훌쩍 넘기고, 면면은 현재 한국 시단의 중심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일상, 고향, 민중, 분단, 역사 등으로 다양하기만 하다. 그래서 "왜 모여 있는지 언뜻 짚히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는 특성상 동인들이 느슨한 연대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데다, 강렬한 지향성을 가진 다른 동인들과 달리 서로의 개성을 존중한 것이 역설적으로 '시힘'의 힘이 됐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나희덕 시인은 "'시힘'의 힘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이 모두 중심이자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못하더라도 내 편이 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언제라도 도와줄 수 있는 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일근 시인은 "동인을 받아들일 때 지역적 안배도 했다. '시힘'의 힘은 사람의 힘이고 거리의 힘"이라며 "몇 번 깨질 위기가 있었지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고 싶다'는 거리의 힘이 동인을 끌고 왔다"고 말했다.
김선우 시인은 나희덕 시인으로부터 동인 제의를 받고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 생각하며 한참을 고민하다 '선배들 밑에서 공부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서클에 규정되지 않는 것, 서정성이라는 나무 아래 있지만 서로의 다양한 가지를 인정해온 것이 '시힘' 동인의 힘"이라며 "소식을 모르더라도 '다들 치열하게 쓰고 있구나' 늘 생각한다. 문학이 이렇게 부박해진 시대에 '시힘'은 그것만으로도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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