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천장과 기둥에,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숲의 풍경이 어른거린다. 그런데 숲의 풍경이 비친 것이 아니다. 진짜 나무도 아니다. 수영장 안에 보이는 숲 같은 이미지는 탄소, 수소, 산소, 규소로 구성된 실리콘류의 화학물질에 전자빔을 쏘았을 때 입자들이 충돌하며 나타나는 형상이다.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나노미터(10억분의 1 미터)의 이미지이기에 전자 현미경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10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세번째 개인전 'The Real(나노그라피)'을 여는 사진작가 지호준(29)씨는 이처럼 과학의 힘을 이용해 얻은 나노미터의 이미지를 사진에 담는다. 본래는 흑백인 이미지에 색을 입힌 뒤 일상의 공간에 투사해 사진을 찍으면 마치 울창한 숲을 합성한 듯한 신비로운 느낌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과학과 예술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 나오는 사진들 역시 카이스트 양자빔 연구실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3년 전에만 해도 그는 인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홀로그램 작업을 하다 우연히 접한 나노미터의 이미지가 작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고 한다. "식물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실체가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어요. 시각적 기호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우리가 보는 일상이 유령같은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에 나노 이미지를 더해 초현실적 이미지를 표현해 봤습니다." 전시는 19일까지. (02)544-8481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