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중인 이세돌이 바둑 한 판 안 두고도 한 달 만에 랭킹 1위에 복귀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3일 한국기원이 발표한 12월 프로기사 랭킹에 따르면 이세돌은 11월에 예정됐던 KBS바둑왕전 본선대국(상대 원성진)이 기권패 처리돼 랭킹점수가 전달보다 12점 떨어졌으나 1위였던 최철한이 11월 한 달간 2승 3패를 기록, 무려 36점이 하락하는 바람에 1점 차이로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은 올해부터 새로 도입된 랭킹제도가 타이틀 보유 여부나 상금 수입 등 다른 변수는 거의 배제하고 오로지 대국 승패에 따른 랭킹점수 증감에 의존해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에게 이기면 점수가 많이 올라가지만 낮은 선수에게는 이겨 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반대로 랭킹이 낮은 선수에게 지면 점수가 많이 떨어진다.
이세돌은 지난 6월 말부터 휴직에 들어가 벌써 5개월째 일체 공식 기전에 출전하지 않고 있지만 워낙 그동안 벌어 놓은 점수가 많아서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계속 랭킹 1위를 고수하다 11월에 들어와 처음으로 2위로 내려 갔다.
이세돌은 지난달 KBS바둑왕전을 끝으로 휴직한 이후 금년 말까지 예정됐던 공식 대국 여덟 판이 모두 기권패 처리됐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더 이상 랭킹점수가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현행 랭킹제도 아래서는 앞으로도 계속 선두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5개월여 동안 전혀 공식 대국을 갖지 않은 이세돌이 다른 선수들의 부진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다시 1위에 오른 것에 대해 바둑가 일각에선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거나 큰 대회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가산점을 주거나 반대로 일정 기간 동안 규정 대국수를 채우지 못하면 감점하는 등 보다 합리적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2월 랭킹에서는 최근 17연승을 기록한 김지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김지석은 지난달 13번의 공식 대국에서 12승 1패를 기록하면서 랭킹점수가 무려 70점이나 올라 지난달 6위에서 4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월간 랭킹점수 70점 상승은 현 랭킹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고 기록이다. 만일 농심배에서 씨에허에게 패해 17.5점을 감점당하지 않았더라면 랭킹1위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김지석이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건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랭킹1위라고 보기엔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현행 랭킹 시스템이 너무 단기간의 흐름만을 크게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이창호와 강동윤이 각각 3위와 5위를 유지한 반면, 박영훈은 2승 4패의 부진으로 전달보다 43점이나 떨어져 7위로 3계단 내려갔고 지난달 11위를 기록했던 원성진이 명인전 결승 진출에 힘입어 10위권에 재진입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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