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있어요?" "네, 있으세요, 고객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대화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커피 체인점뿐만 아니라 편의점, 마트, 콜센터의 직원들은 이러한 '과잉 높임말'을 쓴다. "마일리지 신청하시면 되세요"와 같은 신기한 말도 만날 수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16세기 유럽 미술사에서 '매너리즘'이 유행했다. 르네상스 자연주의 미술에 비해 미학적 효과를 위해 과잉 표현을 사용했다. 사람 모습을 유난히 길게 그리거나, 강하고 부자연스러운 색채를 썼다. 그래서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미학적 효과를 위해 과잉 표현이 담긴 스타일을 의미한다.
언어는 미학적 요소가 많다. 글을 평가할 때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보편적이다. 내용뿐만 아니라 글씨와 서체는 미학적 평가가 많다. 말은 높임말을 잘 사용해야 사회 관습으로 정한 미학적 기준을 준수하는 것이 된다. 관습에 맞지 않게 반말을 사용하면 말이 '더럽게' 들리고 금방 상대방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말을 할 때 미학적 효과를 위해 과잉 표현을 쓰는 것은 언어적 매너리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 문제는 "네, 있으세요, 고객님"과 같은 표현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한국어 문법에 따르면 인물과 소유물만 높일 수 있고 사물은 높일 수 없다. 높임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려면, 주어가 인물 또는 소유물이어야 된다. 물론 "차 있으세요?"와 같은 말은 문장의 주어가 인물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반면에 "네, 카푸치노 있으세요"는 주어가 상대방이 아니고 누구도 소유하지 않은 카푸치노이기 때문에 사물인 카푸치노를 높이게 되어서 문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충돌이 생긴다.
일본어와 인도네시아 자바어도 높임말이 발달한 언어다. 일본어의 경우 한국어와 비슷한 상업적 거래 상황에서 언어 매너리즘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편의점과 체인점 식당이 많이 보급되면서 '편람 높임말'이 생겼다. 아르바이트 점원이 매뉴얼, 교본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과잉 높임말을 가리킨다. 젊은 아르바이트 점원들은 제대로 높임말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편람을 읽고 말을 암기하도록 시킨다. 문제는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못하고 그냥 로봇처럼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언어 매너리즘은 한국에 특유한 현상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도시화 및 상업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농업사회에서 도시사회로 이동하면서 서로 모르는 사람이 도시에 모이고 모르는 사람끼리 말하는 기회가 급격히 많아진다. 특히 상업주의가 발달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매출을 늘리는 도구로서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진다.
상업적 경쟁을 위한 언어 매너리즘은 손님을 끌 수 있는 도구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내용은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 가령 '고객님'이라는 한자어보다 순한국어인 '손님'은 더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손님에게 호감을 준다면, 이 아름다운 한국말은 금방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매너리즘에 대한 피로감이 사회에 퍼지면 또 다른 상업주의적 말이 생기겠지만, 현재의 "네, 카푸치노 있으세요"와 같은 언어 매너리즘은 21세기 초의 특이한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