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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섭 한양대 경영대 학장 '활명수 100년…' 성공 비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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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섭 한양대 경영대 학장 '활명수 100년…' 성공 비법 분석

입력
2009.12.0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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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수명보다 오랫동안 사랑 받는 제품이 하나 있다. 인지도 97.9%, 판매량 81억여병, 112년을 이어 온 1등 상품. 부채표 하면 떠오르는 동화약품의 '활명수(活命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에서 이름 난 브랜드도 1세기를 견뎌 내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 제 1의 브랜드로 활명수는 100년 넘게 인기를 이어왔다. 예종섭 한양대 경영대 학장은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이라는 책자를 통해 숱한 위기와 경쟁 속에서도 활명수가 살아 남은 비법을 분석했다. 그 비법 10가지를 함께 살펴본다.

화젯거리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첫 브랜드 활명수는 원래 궁중 비방에서 비롯했다. 대통령경호실 간부였던 선전관 민병호가 궁중을 오가며 전의(典醫·조선 후기 궁내부 태의원 소속 왕실 의료 주 임관)들과 교류하며 얻은 비법으로 만든 것. 왕의 약을 시중에서 팔았으니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는 대단했다고 한다.

가격도 공격 포인트로 삼아라.

활명수의 첫 가격은 40전. 당시 설렁탕 두 그릇 값으로, 지금의 현재 화폐 가치로 치면 1만7,900원 가량이라고 한다. 현재 까스활명수- 큐 가격(600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궁중 비방이라는 신비 이미지와 고가 전략이 어우러지면서 활명수는 고급 제품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던 것.

소비자의 요구에 발빠르게 맞춰라.

한약처럼 달여 먹지 않아도 되고 가지고 다니기 쉽다는 편리함, '약발'이 금방 오는 등 새로움을 바라는소비자의 욕구를 재빨리 반영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강력한 브랜드와 마크는 인기의 생명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 이라는 뜻의 활명수라는 이름과 <시경> 의 '지죽 상합생기청풍'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니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에서 유래한 '부채표' 마크도 인기를 끄는 데 한몫 했다.

짝퉁의 교란은 미리 지킨다.

특히 방어용 상표 등록이 눈에띈다. 동화약품은 1919년 '활명수'와 비슷한 이름의 '활명액'을 유사 상표 방어용 상표로 등록했다. 활명수가 성공하자 다른 회사들은 '활명회생수',' 보명수'등을 내놓으며 시장을 교란했고 동화약품은 활명액이라는 이름으로 13가지 제품을 한꺼번에 상표 등록해 '보호막'을 친 것이었다. 남양유업이 '17차 (茶)'를 내놓으며 1차부터 99차까지 함께 상표 등록을 하는 등 최근들어서야 큰기업들의 비슷한 사례들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동화약 품의 생각은 매우 앞섰다는 게 예 교수의 평가이다.

중간 상인과 동고동락해야 한다.

동화약품은 또 각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전국 규모의 튼튼한 유통망을 구축해 제품의 접근성을 높였다. 다른 경쟁 업체가 직영점을 설치해 직접 판매를 병행한 데 비해 철저하게 판매소를 통해서만 제품을 공급해 중간상인들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했고 이는 중간상인의 신뢰를 얻는 밑바탕이 됐다.

위기는 기회로 삼아라.

1965년 '까스명수'라는 최대복병이 등장한다. 삼성제약이 활명수와 비슷한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해 청량감을 높인 새 제품에 밀려 부동의 시장점유율 선두자리를 빼았겼다. 동화약품은 되려위기를 기회 삼아 '까스 활명수'라는 제품을 내놓으며 발포성 소화제시장 규모를 키웠고 4년 만에 1위자리를 되찾았다.

새로운 기회는 해외에 널려 있다.

국내 시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동화약품은 만주 시장으로 눈을 돌린 다. '부채표활명수'는1937년만 주국 봉천 중앙 특허사무소에 특허 출원한다. 국내 최초의 해외 상표 등록이다. 만주 진출 전부터 미리 상표 등록을 해 유사 상표의 범람을 막았다.

효자 상품을 키워라.

까스활명수 말고도 헬민, 알프스 디, 홈키파, 후시딘 같은 효자 상품 을함께 집중적으로 키웠다. 덕분에 1990년대 초반 내내 생산 실적업 계 2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혁신을 멈추지 말아야 오래 살아 남는다. 활명수는 국내 최초 신약, 최초상상등록, 국내 첫 생산직 전 사원 월급제 실시, 최초의 여성 해외 지점장 임명, 100년 전부터 시작한 사회공헌활동등 늘'첫' 이라는말이 따라 다녔다. 장수 제품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했다는것.

예 교수는 "진취적 노력 없이는 장수 히트 제품은 만들어 지지 않 는다는 교훈을 준다" 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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