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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자서전 '누구 없는가'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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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자서전 '누구 없는가' 펴내

입력
2009.12.0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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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 종정 법전(法傳ㆍ84) 스님이 경북 김천의 수도암에 주석하면서 쇠락한 선원을 중수할 때의 일이라니, 스님의 세수 50대 후반쯤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곤경에 처한 속가 형님의 아들이 사업자금을 청하러 왔던가보다. 출가자는 속세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게 불가의 가르침. 임종을 앞둔 친모의 마지막 상봉 청을 흔들림 없이 뿌리친 것도 모자라, 다른 스님들이 스님 몰래 친모의 49재 채비를 하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나물이며 떡을 죄다 치워버리고 그 스님들을 꾸짖었다는 법전 스님이다. 스님은 사업자금은커녕 차비 한 푼도 주지 않고 조카를 돌려보냈고, 상심한 조카는 그 길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그 뒤로는 친족들이 찾아오면 절 종무소에 가서 돈을 얻어 차비 정도는 들려 보냈노라고 스님은 담담히 밝혔다.

종정은 '종(宗)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지니는' 자리다. 법전 스님이 태어나 출가하고 수행하며 지금 자리에 이른 동안 맺은 인연과 공부의 과정을 <누구 없는가> (김영사 발행)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는데, 그 안에 저 고백을 담았다. 목숨을 건 수행보다, 깨우침의 고통과 법열보다, 인연이란 저리 끊기 어렵고 검질긴 것일까. 멋모르던 열네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소풍 가듯' 집 떠나 시작한 절집 생활. 스승 성철(1911~1993) 스님에게서 30대에 깨달음을 인가(인정)받고도 지금껏 견성 수행의 고삐를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큰 스님의 진솔한 고뇌. 책에서 스님은 변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피붙이에게 건넨 작은 돈은 삼엄한 불가의 계율 너머까지 번진 생명사랑의 온기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192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38년 백양사 청류암으로 입산하던 일, 1949년 성철 스님이 청담, 향곡, 자운 스님 등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시작했던 봉암사 결사의 말석에 앉아 동참했던 일, 생애 내내 열세 살 위의 성철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지극히 시봉하고 참선에 들면 움직임이 없어 '절구통 수좌'로 볼렸다는 일화,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닷 되 분량의 밥을 해놓고 그 밥 다 먹도록 깨닫지 못하면 걸어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정진했던 일…. 스님은 깨달음의 아득한 화법이 아닌 처음처럼 겸손한 수행 수좌의 언어로 지난 생을 되짚어간다.

어떤 대목, 가령 처음 절 생활에 적응하던 시절의 이야기나 어린 상좌들을 대할 때의 애틋함을 전하는 대목은 읽는 이의 코끝을 시큰하게도 하고, 또 어떤 대목, 출가자의 입문서 격인 '초발심자경문'을 갓 뗀 어린 상좌가 한 겨울에 성불하겠다고 암자를 떠나며 남긴 편지를 전할 때는 독자를 빙긋이 웃게도 한다. 얕은 성취에 들뜬 수행자를 꾸짖을 때의 차가움은 서릿발 같아서 독자들의 옷깃을 저절로 여미게도 한다. 성철 노장과 교유했던 선지식들의 수행 일화와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 등과 함께했던 탁발 추억, 재가 신도들과의 교유 체험담도 책 읽기의 흥미를 더한다.

책을 내며 종정 스님이 머리말 첫머리에 끌어다 놓은 문장은 부처나 고승대덕의 글이 아닌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인생이란 풀잎 끝의 이슬과 같다'는 말씀. "내 나이가 팔십하고도 중반에 이르니 이제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닿아온다." 너무 흔해 진부하게도 여겨지는 저 가르침이 종정 스님의 삶의 맥락에 닿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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