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산업 살 길은 '3 New' 전략
국내 보험권은 지금 엔진이 꺼진 채 달리는 자동차 신세다. 달리던 관성으로 어렵사리 속도는 유지하고 있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가 멈춰 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 손해보험사 사장은 "여러가지 현안이 많지만 정작 큰 고민은 앞으로 먹고 살아갈 차세대 성장동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2000년대 들어 보험권의 꾸준한 성장에는 '주력상품'의 공이 컸다. 생명보험에서는 종신보험에 이어 변액보험이, 손해보험에서는 장기보험이 인기몰이를 하며 효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종신이나 장기 보험은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변액보험은 금융위기 학습효과로 소비자들이 다시 찾기를 주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권이 ▦새로운 상품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시장(해외)에서 미래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이른바 '3 new'전략을 주문하고 있다.
먼저 소비자를 끌어들일 새 주력상품이 절실하다. 1순위로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수요가 늘고 있는 노후대비 보험, 즉 각종 연금보험과 장기손해보험이 꼽힌다.
단, 은행ㆍ증권과 경쟁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 이진면 보험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연금을 돈 외에도 양로시설 입주권 같은 현물로 지급하는 제도개선이나 장기간병보험 등과 연계한 서비스 제공 같은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녹색보험 역시 후보로 꼽힌다. 탄소배출권 사업의 투자위험을 줄여주는 보험상품,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와 관련된 보험상품,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비한 상품, 환경오염손해배상책임보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동안 자동차보험과 장기보험에 치중해 왔던 손보업계는 일반손해보험 육성을 준비하고 있다. 집에서 일어나는 화재나 도난 등을 보장하는 주택종합보험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가입률이 90%에 달하지만 우리는 아직 제로에 가깝다. 앞으로 실수로 낸 화재도 발화자가 배상책임을 지는 만큼, 각종 화재 배상책임보험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상품보다는 서비스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보험 본연의 강점을 살려 단순한 자산관리가 아닌 고객의 인생을 단계별로 관리해주는 종합 금융서비스 개발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도 이에 맞게 복합 또는 패키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창돈 삼성금융연구소 상무는 "지금까지는 상품판매를 위한 상담 서비스였다면, 이제부터는 '선(先)서비스-후(後)판매'가 돼야 하며 상담 자체로도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보험시장을 감안하면 해외진출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내년부터 생보사 상장 등이 잇따르면 해외진출을 위한 실탄도 마련된다.
선진국의 글로벌 보험사들은 일찍부터 해외에서 답을 찾았다. 1970년대 프랑스의 지방 보험사였던 악사(AXA)는 현재 국내 보험사들보다 훨씬 작은 규모일 때부터 해외진출과 인수합병에 나서 최근에는 수익의 76%(2006년 기준)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밀한 준비를 주문한다. 기존 '출장소' 수준을 넘어 현지화에 성공하려면 주저해서도 안되지만 무턱대고 진출해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예컨대 전세계 마지막 황금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외국보험사가 진출할 경우 국내사와 5대5 합작 형태만 인정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다.
외국사로 중국에서 유일하게 독자영업권을 딴 AIA는 40년 이상 끈질긴 준비 끝에 영업권을 따냈을 정도. 주 상무는 "중국인들에게 거의 자국 회사로 인정받는 AIA처럼 과욕을 버리고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전문가 제언 "금융상품 융합시대… 보장성·수익률 함께 높여야"
"앞으로 금융상품은 갈수록 융합형이 대세를 이룰 것이다. 보험 상품은 보장도 하면서 수익률도 높아야 한다. 자본시장과 융합한 날씨보험ㆍ파생상품 등 새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도 놓치지 말아야 할 트렌드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 보험은 다음 세대가 부담을 떠안는 구조여서 한계가 있다. 민간 보험사가 다양한 관련 상품을 개발해 공적연금의 부족한 부분을 적극 메워야 한다. 해외진출 역시 철저한 현지화와 각 회사마다 잘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진출해야 성공할 수 있다. 보험은 다른 금융산업보다 훨씬 지역성이 강하다."
류근옥 서울산업대 경영학과 교수(전 보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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