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난달 30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은 국가 주도로 경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비상경제조치로 규정할 수 있다. 이번 조치에 따라 100대 1 비율로 구권은 6일까지 교환되며 이후부터는 사용이 금지된다. 북한 당국은 가구당 구권 화폐 10만원까지 1,000원의 새 돈으로 교환해주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은행에 저축하도록 했다.
시장통제 등 다목적 비상조치
이번 화폐개혁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 당국이 초기 혼란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체제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나아가 체제와 정책 전반에 대한 주민들의 총체적 불신을 가중시킬 수 있다.
북한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이번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일까. 우선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상거래를 통해 개인적 부를 축적한 시장세력을 국가 통제권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신ㆍ구화폐 교환 액수의 제한 및 강제저축을 유도해 부족한 국가재원을 조달하고, 통화 발행 및 통제권을 이용해 계획경제를 일정 수준으로 복원하려는 속내도 비친다. 민간 유동성 축소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 여러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척결하려는 의도도 읽을 수 있다.
그간 북한에서는 국가재정의 악화로 인해 배급제 및 공공제도가 붕괴되어 시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비사회적 현상이 확산되었지만 실효적인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특권층과 장사 수완이 좋은 주민은 막대한 부를 축적해 장롱 속에 보관해왔다. 이는 자연스레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졌고, 달러화나 위안화 수요가 늘면서 북한 화폐 가치는 추락했다. 여기에 만성적인 물자 공급부족이 겹치면서 가파른 물가 상승을 불러왔다. 북한 당국은 개인의 은폐 자산을 국영은행 저축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같은 통제불능 상황이 금융자산의 강제동원 조치와 다름 없는 화폐개혁의 극약처방으로 이어진 듯하다.
북한 지도부는 체제의 명운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목표 달성을 위해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핵 문제 해결의 지연 등으로 외자 유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종의 '이자 없는 채권' 성격의 새 화폐 발행으로 민간 유동성을 저축의 형태로 환수해 국가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화폐개혁에 따를 경제사회적 부작용이다. 이번 조치로 외화를 안전자산으로 믿고 보유해 왔던 특권층들은 외환가격 상승으로 더 많은 불로소득을 얻을 것이다. 달러와 위안화 가치가 폭등하면서 수입재화 가격이 오르면 물가는 더욱 뛸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다수의 주민들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북한 정권과 시장세력, 일반 주민 사이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주민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운다 해도 당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과 비난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정치경제적 혼란 올 수도
북한 당국이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식량과 공공서비스를 정상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화폐개혁으로 확보한 국내 저축의 생산적 투자, 생산 및 수출 증대, 재정수입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의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이런 경로를 밟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권력세습 시기와 맞물려 단행된 화폐개혁은 북한 체제 내부에 유례 없는 정치경제적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2010년은 북한 정권이나 주민 모두에게 가장 혹독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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