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3일 ‘무분별한’ 상고(上告)를 제한하고,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에 반대하는 내용의 ‘상고심 기능 정상화 방안’을 의결해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높은 문턱? 상고 제한 ‘YES’
우선 주목할 부분은 장기 과제로 무분별한 상고를 제한할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문위는 “최고법원의 접근 가능성을 무제한 열어두면, 대법원 기능 수행에 지장을 주고 분쟁해결이 지연돼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대폭 줄여 대법관 업무 부담을 줄임으로써 중요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사건 폭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소한 분쟁도 대법원까지 가야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에 접수된 본안 사건 수는 2000년 1만6,492건이었으나, 2004년 2만건을 넘어 지난해 2만8,040건에 달했다. 소부(小部)를 구성하는 대법관 12명(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제외)이 한 사람당 1년에 2,000건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
상고 사건의 폭증은 심리불속행(상고심절차특례법이 정한 상고 이유가 아니면 심리없이 기각하는 것)의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해 심리불속행 비율은 65.4%다. 10건 중 6,7건은 심리없이 기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고 제한 문제는 1990년 반대여론 때문에 폐지된 ‘상고 허가제’를 사실상 부활하자는 취지여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좁은 문? 고법 상고부 ‘NO’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최종심 기능을 일부 분담하는 고법 상고부 설치 문제다.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는 최종적으로 도입이 무산됐지만, 올해 6월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그 불씨가 살아났다. 고법 상고부가 설치되면 대부분 상고심 사건은 여기서 처리되고, 대법원은 중요 사건만 선별해서 심리하게 된다.
자문위는 “재판의 통일성이 저해되고, 연고주의 폐단이 우려되며, 최고법원에서 재판받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와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고법 상고부 설치 문제는 상고심 사건의 수임 문제와 직결돼 있어, 변호사 단체별로 의견이 분분하다. 상고심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지금처럼 서울지역 변호사들이 상고심 사건의 대부분을 수임하는 구조가 깨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서울을 뺀 지방변호사회에서는 자문위 안에 대해 “서울 중심의 이기주의가 반영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신용도 회장은 “행정은 지방분권으로 가는데, 재판은 항상 서울 중심”이라며 “대법원은 많은 사건에 허덕이면서 처리도 못하는 사건을 왜 계속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과 서울 변호사를 중복 수임해야 하는 비용 문제도 지적했다.
대법원장이 자문위 안을 승인하면, 대법원은 개선 방안을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상고심 처리 구조 개편은 관련 단체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사안이라,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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