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다문화 아동들의 인권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해 일하는 한국펄벅재단은 경기 부천시의 소중한 랜드마크 중 하나다. 최근 펄벅재단과 부천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펄벅재단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인근 안산시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혀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하는 듯 했다. 어제 펄벅기념관 배경희 관장과 김희겸 부천시 부시장이 만나 충분한 대화를 갖고 원만하게 해결키로 했다니 다행이다. 특히 부천시가 재단의 취지를 감안하여 유연한 행정력을 발휘한 대목이 반갑다.
▦소설 '대지(The Good Earth)'의 작가 펄 벅(미국. 1892~1973) 여사가 만든 재단이다.재단은 1967년 보호자 없는 혼혈인을 위해 경기도(현 소사구 심곡본동)에 '소사 희망원'을 세웠다. 이 희망원이 1975년 폐쇄된 이후 재단은 서울에서 정부의 혼혈인 지원사업을 위탁 운영해 왔다. 부천시가 2001년 재단과 함께 옛 희망원 위치에 '펄벅기념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재단은 부천시와 각별한 인연을 새로 이어갔다. 2006년 9월 부천시가 기념관을 개관하여 재단에 운영을 위탁했고, 펄벅재단은 다시 부천시의 상징으로 돌아왔다.
▦지원대상을 외국인노동자 혼혈자녀(Kosian)로 확대해 오던 재단은 부천시라는 튼튼한 동지를 만나면서 다문화 가정 아동들의 인권향상에까지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H.E.L.P. 프로그램'을 내세워 전문적인 사회복지 기관으로 성장했다. 건강관리(Health Care), 교육지원(Education), 생계지원(Livelihood), 사회정서보호(Psycho-social Protection) 프로그램엔 펄 벅 여사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국 풋볼 스타 하인즈 워드를 국내에 초청하여 다문화 가정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일도 재단 활동 중 하나였다.
▦훌륭한 뜻을 실천하는 펄벅재단과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는 부천시 사이에 '조그만 알력'이 불거진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예단하고 확대하여 싸움처럼 만든 데는 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다. 펄벅기념관 홈페이지(pearlsbuckhall.or.kr)엔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는 펄 벅 여사의 찬사가 새겨져 있다. 모두가 소홀히 여기는 그늘진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펄벅재단, 국가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 도움을 주는 부천시, 양측의 노력에 격려를 보낸다. 우리 속담에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고 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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