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위기·생보 상장… 제3의 변혁기
보험업계엔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있다. 10여년 마다 한번씩 대변혁기를 맞는다는 것.
제1기는 1980년대말. 시장개방과 함께 진입장벽이 걷히면서, 국내보험시장은 다수의 보험사가 출현하는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진입했다.
제2기는 외환위기. 수많은 보험사가 난립하던 보험시장은 환란 이후 부실보험사 퇴출과 통합ㆍ합병을 통해 새로운 분수령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보험산업이 현재 '제3의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외적으론 글로벌 금융위기, 대내적으론 생명보험사 상장과 각종 제도ㆍ법규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근본적 변화의 계절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보험사들의 대응방식에 따라 이번이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며 "보험권의 오랜 관행과 영업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점인 만큼 이에 맞는 새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기업공개. 20년을 끌어온 생보사 상장 문제는 올해 비로소 물꼬가 트였다. 지난 10월 생보 상장시대의 막을 연 동양생명을 필두로 내년엔 삼성생명, 대한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대어급'의 증시진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생보사 상장은 단지 주식거래가 활성화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상장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주주의 감시를 받게 되면, 향후 보험업계의 영업전략에는 일대변화가 올 수 밖에 없다.
경영진은 전보다 수익과 효율을 좀 더 중시할 것이고, 늘 논란이 되어왔던 사업비 등에 대한 투명성 압력도 커질 것이다. 보험모집 방식이나 관행, 영업채널 등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공산이 크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앞으로 보험영업에서 튼튼한 자본력은 필수라고 봤을 때, 상장은 시기의 문제일 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보험을 중심으로 금융그룹을 갖출 제도적 토대도 마련됐다. 정부는 최근 금융지주사법 개정을 통해 '보험지주사'의 등장을 허용했다.
보험사는 이제 타 금융회사는 물론 제조업 계열사까지 거느린 채 다양한 고객 정보를 공유하며 시너지 넘치는 영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한 정부 당국자는 "ING나 AIG같은 세계 굴지의 보험사들은 모두 지주사 형태를 취하고 있다"며 "보험지주사 체제가 발전할 경우 '한국판 ING'등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험지주사 후보로는 대한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을 거느린 한화그룹,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을 가진 동부그룹,상장사 동양생명 외에 동양종합증권 등을 두고 있는 동양그룹 등이 꼽히지만 아직 이들 그룹 반응은 매우 신중하다.
지주사 요건을 갖추려면 자회사 지분을 20%(비상장사 경우 40%) 이상 가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주사로 전환돼 얻는 이익보다 출혈이 더 클 걸로 본다는 얘기. 하지만 이 역시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충하면 전환이 빨라질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기존 보험 판매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전문판매조직 허용안이 들어 있다. 장기적으로 상품을 만드는 회사(제조)와 파는 회사(판매)를 나눠 지금까지의 고비용 판매구조를 바꿔보겠다는 것.
이 경우, 전속 설계사 중심의 영업에 익숙해 있던 보험사들에겐 보험료 협상권한까지 가진 판매조직이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 성대규 보험과장은 "퇴직연금을 놓고 은행, 보험, 증권이 벌이는 경쟁처럼 업권간 경계가 갈수록 무너지는 추세에서 결국은 사업비를 줄이는 회사가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보험사들도 반발만 할 게 아니라, 판매조직을 판매전문 자회사로 분리해 함께 경쟁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변화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인적 채널에 의존해온 기존 판매질서를 한꺼번에 흔들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면(對面)영업'이 강조되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간과할 수는 없으며,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 금융위기 후 세계적인 화두로 등장한 자본건전성 규제 강화와 농협, 우체국 등의 보험시장 진출 역시 보험권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전문가 제언/ "금융 겸업화 대세… 새 환경 맞게 빠른 결정을"
상장이나 판매채널 다양화 등 최근 변화는 사실 새로 불거졌다기 보다 보험권의 오랜 숙제였다. 문제는 모두가 알면서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와 카드사태, 이번 금융위기까지 너무 많은 위기를 자주 겪은 탓에 안전하고 검증된 비즈니스만 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 달라지는 환경을 남보다 먼저 내다보고, 빠른 결정으로 치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령, 금융 겸업화가 대세라면, 보험에만 집중할 지, 보험지주사를 세울 지, 해외로 나갈지 전략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부도 최근 들어 규제를 많이 완화하고 있지만 공정한 룰을 정확히 만들고 달라진 경쟁 환경에서 반칙이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보험연구원 오영수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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