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다. 인간미 가득한 우정이 있다. 사회비판적 시각까지 담겨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뒤죽박죽 영화로 오해하지는 마시라. 프랑스 영화 '웰컴'은 입체적인 이야기와 다층적인 주제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연출력으로 일관한다. 종영이 다가올수록 가슴은 뜨거워지고 머리는 차가워진다.
영화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에서 트럭을 훔쳐 타고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쿠르드 소년 비랄(피랫 아르베르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라크에서 4,000㎞를 걸어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에 도착한 비랄이지만 단속의 벽을 넘지 못한다. 밀입국 동료들로부터 '왕따'까지 당한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밀입국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비랄은 꿈을 꺾지 않는다. 수영을 배운다. 영국과 프랑스를 가르는 도버해협을 건너기 위해서다. 수영코치 시몬(뱅상 랭동)이 무모하다며 말리면서도 시혜를 베푼다. 바다 건너 애인은 다른 남자와 강제로 결혼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비랄의 마음은 다급하다.
사회성 짙은 이 영화는 격한 구호를 부르짖지 않는다. 값싼 동정심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려 들지도 않는다. 섣부른 영웅담을 꺼내지 않고, 사회 부조리에 직격탄을 날리지도 않는다. 그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모습을 TV화면으로 스치듯 등장시키는 식으로 보수화한 프랑스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다. 고함치지 않으면서도 오래도록 가슴을 울리는 이 영화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몬이 비랄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도 너무나 속물적이어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시몬은 불법체류자를 위해 자원 봉사하는, 이혼할 아내의 마음을 붙잡으려 비랄에게 동정심을 발휘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몬은 비랄에게서 마음 속에 지워왔던 사랑과 꿈의 의미를 되새긴다. 결국 시몬은 법의 제재를 무릅쓰고 비랄을 아들처럼 대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행동을 무심코 행하는 과정을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한다.
시몬이 나서지만 비랄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지닌 의미다) 받지 못한다. 망망대해에서 시커먼 파도에 맞서 팔과 다리를 힘겹게 움직이는 비랄의 모습이 겨울 바닷물이 돼 보는 이의 몸을 움츠리게 한다. 비랄은 과연 사랑을 지키고 명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수 있을까.
감독 필립 리오레는 칼레에서 만난 불법 체류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연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비랄을 연기한 아르베르디는 리오레 감독이 유럽의 쿠르드인 거주지역을 여행하며 찾아낸, 연기 경력이 전무한 17세 소년이다. 앳된 얼굴에 진실성이 담긴 눈빛이 또래의 어느 직업배우도 따라 잡지 못할 연기로 이어진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과 라벨 유럽영화상을 수상했다. 한달이 채 남지 않은 2009년, 이 이상 가슴을 칠 영화는 나오지 않을 듯하다.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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