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말했다. "키 180㎝ 이하의 남자는 루저다." 그러자 한 남자가 말했다. "속옷에 뽕 넣는 거 인정한다. 키 높이 깔창도 인정하라."
KBS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가 '루저' 발언에 상처 받았을 남자들의 하소연을 대변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키, 얼굴, 소득 어느 하나 변변찮은 남자들의 연애가 얼마나 어려운지 털어놓는다. "니들끼린 쫄면 먹고 / 나 만나면 파스타냐"며 남자를 '현금인출기' 취급하는 여자에게 항의하고 여자들이 밥 사는 그 날을 꿈꾼다. 데이트 장소로 청담동 와인바를 기대하는 여자 앞에서 '열흘 치 우리 집 반찬 값'인 와인 가격을 걱정하며 남자는 한 없이 약해진다.
돈은 없지만 "(휴대폰 커플 요금) 2년 약정 안 끝났다. 이 악물고 사귀어 보자"며 여자에게 매달리는 그들은 경쟁 사회에서 연애마저 힘든 '루저'로 취급 받을까 두려운 남자들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무작정 '약한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보원'의 출연자들은 "(내 돈 들여) 여행 갔으면 당일 날 올라가자고 하지 말자"거나, 자신이 돈 들여 간 놀이공원에서 "귀신의 집 들어가서 뽀뽀라도 한 번 더 하자"고 외친다. '남보원'은 여자가 경제적 수준이 높은 데이트를 원하면, 남자들은 데이트 도중 (가능하면 예쁜 여자와) 스킨십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남보원'이 재치 있는 현실풍자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남자나 여자나 로맨스만 원하는 순정파는 없다. 모두 외모와 경제력을 따지고 그것을 교환한다. tvN 예능프로그램 '롤러코스터'의 인기 코너 '남자 탐구생활'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고, 남자는 "예쁘다"라는 말이면 무조건 눈을 번쩍 뜨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 외모와 같은 외적 조건은 한국 남녀의 모든 삶의 기준이 될 만큼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남자는 돈이 있어야 사람 대접 받고 여자는 조금이라도 예뻐야 유리하다. 그리고 남녀는 그렇게 서로에게 항의하면서도 상대의 기준을 맞추려고 허덕인다.
데이트 비용 내는 남자, 성형수술을 고민하는 여자. 웃기지만 어딘가 씁쓸한 이 풍경이 언제쯤 바뀔까. 그 점에서 '남보원'에 출연하는 박성호의 한 마디는 귀담아 들을 만 하다. "비싼 옷 사줬으면 우리 인간적으로 (백화점) 경품 응모는 내 이름으로 합시다." 그렇다. 서로 좀 그렇게 살아보자. '인간적'으로.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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