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매미들의 '낮병동의 매미들'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재산이라면 젊다는 것밖에 없다.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뜻"이라는 히피의 신조를 21세기로 치환시킨 듯, 철저히 반사회적인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디딤대가 있기에, 무대는 구 소련의 젊은 예술가들을 그린 소설 '아르바트의 아이들' 혹은 뉴욕 뒷골목 한켠에서 언젠가는 각광받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그린 뮤지컬 '렌트'와 궤를 같이 한다.
'낮병동의 매미들'은 젊은 예술가의 제한적 시각에 머문다는 약점에도 불구, 생생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연극은 너무나 강한 개성 탓에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6명의 젊은 예술가에 초점을 맞춘다. 상업주의라는 메커니즘과 손 잡거나 거기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의지도 없고, 자신만의 재능을 아직 발견하지도 못한, 평균치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믿지 않는다. '노빠'도 '소통'도 이들에게는 야유의 대상으로서만 의미 있을 뿐이다. 이들은 '반사회적' 행태를 지켜보던 기관원들에 의해 결국 정신병동에 수용된다. 이런 설정은 어릴 적 정신병원 옆에서 살며 환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는 작가 조영호의 경험에서 나왔다. 작가는 그 환자들이 마치 한 순간 빛을 보기 위해 오랜 세월을 땅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매미 같은 존재로 비쳤다는 것. 그처럼 '예술가는 중간자적 존재'라는 생각이 연극으로 발전했다. 무대 위 3개의 이층침대는 원래는 예술가들의 공동숙소 침실이었으나, 극 후반부에는 정신병동의 환자용 침상으로 바뀐다.
극단적인 상황 설정, 이분법적 대치 구조 때문에 이 연극은 자칫 사회가 거둬들이지못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단세포적인 반발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들이 치밀하게 주고 받는 연기 덕에 극장 안은 생동감이 가득 넘친다. 대사를 멈추는 대목(pause)까지도 빈틈이라기보다는 극의 구조로 받아들여질 만큼 무대의 설득력은 물질적이다.
이 무대를 연출했고 실제 배우로도 출연하는 여성 희곡작가 조영호는 "어느 한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지 않은 이 연극은 배우들의 앙상블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딥 포커스의 연극"이라고 말했다. 자본이 예술을 통제하는 오늘의 현실을 일상의 차원에서 속속들이 보여준다는 뜻이겠다. 2010년 1월 31일까지, 아리랑소극장.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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