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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우리 눈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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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우리 눈으로 보는 세상

입력
2009.12.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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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쯤에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명한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책을 내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주로 아랍세계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을 고발하였지만, 그 뒤 오리엔탈리즘은 아랍 뿐 아니라 서양 아닌 모든 곳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양인의 편견'에 갇힌 한국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은 비단 서양인의 의식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서양인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그들은 서양의 앞선 문명과 사상을 받아들이다 보니 자연히 세계관과 사고방식까지도 서양인의 것을 수용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오랫동안 중화주의 세계관을 받아온 전통에 일본적인 사고와 미국적인 학문, 사상이 숨가쁘게 들어오고 뒤섞여서 한국의 고유한 세계관이나 관점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이든 외국이든 또는 외국과 한국과의 관계든, 세상사를 보는 눈을 우리 자신이 만들지 못하고, 중국이나 미국 같은 앞선 문명에서 만든 것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우리 자신의 처지에 입각한 고유한 시각을 갖지 못하고 독창적인 사상이나 학문을 이루지 못하여,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적인 식민지 상태에 놓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앞선 문명의 사상이나 과학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마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듯이,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인식체계를 모두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나 사상을 우리 자신이 만들지 못하고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쓸 때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근한 보기로, 우리는 세계사를 배울 때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준 세계사 지식을 그대로 받아 배운다. 그 세계사는 서양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이다. 비서양인은 주변인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까지 그 '신대륙'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되어 버린다. 또 '인디언'은 악한이고 백인은 착한 사람이 된다.

한국 정치를 연구하는 데에도 미국 정치학에서 만든 이론만 따르다 보니 미국 학자들이 관심 없는 현상은 한국 정치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이 모두 상식으로 알고 있는 한국 정치의 휩쓸림 현상 같은 것이 전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치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미국 정치학 이론에서 연구 과제를 억지로 끌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편향된 인식체계로는 세상을 공정하거나 객관적으로 또는 풍부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오리엔탈리즘이 보이는 하나의 역설은 그 담론 또한 팔레스타인이나 한국에서 나왔더라면 세계는커녕 해당 지역들에서도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서양의 지적 지배가 크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지만, 말에 그칠 뿐 아직 본격적인 실천 단계에 들어서지는 못했다. 요즘 들어 조금씩 '우리 눈으로 보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새로운 관점의 세계관 주목

이화여대 사학과의 강철구 교수는 최근 <우리 눈으로 본 서양사> 라는 책을 펴내어 서양인의 서양사가 얼마나 편향되었나를 지적하고 그와는 다른 관점을 잘 보여주었다. 필자 또한 몇 해 전에 세계화와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우리 눈으로 보는'책을 낸 적이 있다. 많지는 않으나 이처럼 세상을 비서양인 또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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