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전임자 임금문제의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비교적 단순해졌다. 노사정 6자회의에서 강경입장을 고수하던 정부와 민주노총이 일단 뒤로 빠지고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여온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담판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2일까지로 시한을 못박고 양측에 노사 합의를 종용하면서 막판 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사실 두 사안에 대해 한노총과 경총의 입장은 근접해 있다.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경총은 무조건 반대, 노동계는 찬성으로 대립하다가 한노총이 지난 달 30일 반대쪽으로 선회하면서 입장차를 좁혔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방침에 대해서도 한노총은 무조건 반대에서 노조 스스로 전임자 임금을 부담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경총은 예정대로 전임자 임급지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단계적 시행방안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아 한노총이 제시한 준비기간을 매개로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간 노사정 6자회의에서 정부가 원칙을 강조하며 노사 모두를 압박했던 것과 달리 노사가 하나씩 주고받는 핑퐁게임이 가능해진 것이다.
합의결렬에 따른 양측의 부담도 크다. 한노총은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의 제안에 응하고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파기함으로써 12월 총파업의 동력마저 떨어진 상태다. 장석춘 위원장이 제시한 절충안에 대해 내부 반발도 거세다. 실제 장 위원장의 30일 기자회견 직전 열린 산별 대표자회의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은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총도 기존 입장만 고집할 경우 노사관계의 자율결정을 포기하고 혼란을 방조했다는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전임자 임금지급의 경우 중소업체를 제외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복수노조 도입은 당분간 유예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노사간에는 비교적 무난한 합의가 가능하다"며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 절차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숫자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모두 준비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총론 정도가 당의 입장이고 그렇게 노사에 주문했다"며 "다만 구체적인 유예기간이나 적용규모 등은 노사가 합의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내심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일단 노사의 합의안을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노사가 합의할 경우 또다시 원칙만을 내세우며 판을 뒤집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1일 "노사가 합의해 복수노조 유예안을 제시하더라도 담합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양측이 원칙을 지키며 합의했으면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법 개정에 앞서 노사 합의를 강조하고 있어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노사관계는 노사간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정부가 고집을 버려야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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