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만 봐도 전로(轉爐) 안의 쇳물이 제대로 '익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4년간 불꽃만 보면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불꽃 같은 인생을 사는 '불꽃남' 김영화(47ㆍ사진) 취련사(吹鍊士)가 그 주인공. 취련사란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만든 쇳물에 고압의 산소를 불어넣어 탄소와 황 등 불순물을 없애는 일을 하는 숙련공.
고압의 산소를 쇳물이 담긴 전로에 얼마나 잘 불어넣느냐가 쇳물의 '성질'을 결정한다. 잘 휘어지는 놈, 잘 부러지는 놈, 잘 변하는 놈…. 전로에서 이글거리는 쇳물과 불꽃의 색깔, 온도, 움직임 등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은 게 없다. 조그만 실수를 해도 고객들이 요구하는 철강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제철소 생산직 가운데 유일하게 '사'(士)를 붙이는 까닭이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씨. 살림살이는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팍팍했다. 7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장 취직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다짐을 하고서야 용산공고에 입학했다. 대신 동생은 고등학교에 가질 못했다. "동생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아버님 고향이 이북이라서 그런지 큰 아들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약속대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철물가게에 취업했다.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아버지를 졸라 1년 뒤 홍익공업전문대학 금속학과에 들어갔다. 비록 2년이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를 다녀온 뒤 김씨가 취업한 곳이 바로 포항제철(현 포스코). 86년 김씨의 불꽃 인생은 포스코와 함께 시작됐다. "처음에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워낙 숙련이 필요한 일이라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김 취련사의 첫 업무는 신호수.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에다 일정량의 고철을 섞어서 철강을 만드는데, 이때 고철이 전로에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전 과정이 기계화한 지금과는 달리 수작업이 많아 위험천만한 일도 적지 않았다. "전로에 마하 2~3 되는 속도로 산소를 불어넣으면 내부 온도는 1,650~1,700도까지 올라갑니다. 불꽃과 쇳물이 밖으로 튀는 게 다반사였죠."김씨는 그 때 목 주위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87년 결혼한 김씨 부인이 당시 크게 울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는 법. 김씨는 5년차부터 취련사로서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 전로에는 한 번에 쇳물 300톤과 고철 40~60톤이 들어간다. 용광로에서 바로 나온 쇳물은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쇳덩이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쇳물 자체는 탄소를 비롯한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어 쉽게 부스러진다. 쇠를 쇠답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 바로 고압의 산소를 불어넣은 것. 5대 불순물(탄소 실리콘 인 망간 황)은 모두 산소와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기체나 슬러그(찌꺼기) 형태로 바뀌는데, 산소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취련사의 숙련도를 결정한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철강 종류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많게는 700여종에 이르다 보니 그에 알맞게 산소를 불어넣고,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아니고선 제대로 취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꽃의 색깔은 처음 붉은 색에서 시간이 갈수록 황적 색으로 바뀌어간다. 불꽃도 시간이 갈수록 '힘'이 느껴지는 모양새를 갖춘다. 불꽃에서 무슨 힘이 보일까. 취련사에겐 불꽃은 생물과 마찬가지다. 300톤의 쇳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시간은 약 30분. 이 중에서도 산소 투입에는 17분 가량이 소요된다. 승부시간은 매우 짧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24년간의 그의 경험은 1,250회 동안 '무결점' 제품 생산을 가능케 했다. 수 차례 상도 탔다. 이런 그의 성공에는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 쌓기 노력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입사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89년 제강 기능사 1급, 2004년 제강 기능장을 거쳐 2007년엔 학사 학위 소지자도 따기 어려운 철야금(鐵冶金) 기술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올해엔 사이버 교육으로 학사모(금속공학)도 썼다.
"특별히 한 게 없다"고 겸손해 하는 김씨는 내년에는 대학 강단에도 선다. 김씨의 오랜 현장 경험의 노하우를 서라벌대학 제철플랜트학과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교수가 된다는 설렘도 있지만, 준비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포스코 연수원에서 공부하기 더 바쁩니다."
김씨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기술뿐만이 아니다. '기능 정신'이 더 중요하다. 자신이 공고를 다닐 때만해도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는데, 요즘은 마치 기술고등학교가 '패자'들이 가는 데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한다. "우리 회사에서도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가끔 사표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배들의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사회인식도 문제입니다. 기능 인력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김 취련사는 오늘도 이글거리는 쇳물 불꽃을 보며 불꽃 같은 내일을 준비한다.
포항=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포스텍·RIST 산학연계 교육 20여년 포스코의 맞춤형 산업 인력 산실로
포스코 산학협력은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86년 포항공대(현 포스텍)를, 87년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각각 설립해 포스코-포스텍-RIST 체제를 구축한 게 이런 맥락이다. 이는 국내 최초의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로, 포스텍 설립은 80년 광양제철소 건설 때부터 구상됐다. 철강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우수한 산업인력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목적에서 출발한 포스텍은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태동해 학사운영정책, 신입생 선발 등에서 당시 사회분위기로는 파격적인 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는 '신설대학은 개교 후 3년까지 후기로 학생을 모집한다'는 방침에 대한 특례를 적용하고, 학력고사 성적 280점 이상의 학생만 응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원자격 제한건도 승인해 세계 일류 대학 설립이라는 포스코의 강한 의지를 인정해 주기도 했다.
포스코는 73년 포항 1기 설비 준공 당시 경쟁력 확보와 순조로운 설비확장을 위해서는 기술자립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전문 연구기관 운영현황을 면밀히 조사ㆍ검토해 77년 1월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어 87년 이를 산업과학기술연구소(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로 확대ㆍ개편하면서 독자적인 철강 기술개발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까지도 회사의 제철소 건설과 조업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기술, 포스텍의 기초과학 연구, RIST의 응용 개발연구 수행 등을 결집해 '기초과학-응용개발-현장적용'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기술경쟁력을 이끌고 있다.
포철공고를 통한 맞춤형 인재 육성도 포스코 산학협력의 큰 줄기다. 제철소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능, 인성, 어학능력을 갖춘 현장인력의 확보와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다. 포철공고에서는 이를 위해 2학년생을 대상으로 포스코 맞춤형 인재를 선발한 뒤, 심화 교육 기간을 거쳐 3학년 2학기 때 채용을 최종 확정하고 있다. 졸업시까지 80시간의 봉사활동, 교양강좌 등을 통한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것도 특징이다. 기능 자질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인성이 포스코 윤리경영의 큰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박기수기자
■ 기능인력 지원 '현장 경영' 프로그램
포스코는 제철소 건설 초기부터 우수 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자가주택 제도를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철소 건설에 앞서 주택단지 부지를 마련할 정도로 주거안정에 힘을 쏟았다. 박태준 당시 사장은 "직원들 주거가 안정돼야 정상적인 회사업무가 가능하다"며 "장기간의 건설기간에 안심하고 현장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자녀교육 문제까지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자가주택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아울러 포스코는 현재 기능인력 지원을 위해 기계정비산업기사, 설비보전기사 등 전문자격 취득 축하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는 전용 문화 공간을 둬 직원들이 휴일에 가족들과 격조 높은 문화생활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04년부터는 은퇴 기능인력을 다시 현장에 배치하는 퇴직자 활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포스코는 현재까지 독보적 기술력과 노하우, 리더십을 가진 퇴직자 90여명을 현업에 재배치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직원들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포스코는 이 프로그램 효과가 기대 이상인 만큼, 앞으로 이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허남석 부사장은 "기술 자원 경험 등 모든 게 백지상태에서 출발한 포스코의 핵심 성장 동력은 '현장 경영'에 있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기능인력 지원을 강조했다.
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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