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째 영화가 아닌 저의 새로운 데뷔작으로 불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임권택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영화입니다."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1일 '달빛 길어 올리기' 제작발표회를 열고 101번째 영화의 출발을 알렸다.
내년 1월 8일께 촬영에 들어갈 '달빛 길어 올리기'는 한지를 소재로 한다. 조선 전기 당시의 한지를 만들어 '세종실록'을 재현해 내려는 만년 7급 공무원 종호(박중훈)의 삶과, 재현 과정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의 모습이 얼개를 이룬다. 임 감독은 "우리 것을 영화에 담아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알리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는 2년 전 한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한번 해보시죠" 하며 연출을 권했고, 임 감독은 "무조건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출발은 수월했으나 제작발표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당초 올해 상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했지만 시나리오가 늦어지면서 제작이 지지부진했다. 임 감독은 "한지의 세계가 워낙 넓고 깊어 당황했다"며 "고통스럽기도 했고 때론 절망스러웠다. 한때는 민 위원장을 원망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돌이켜보면 좋은 고통이었고 좋은 배움이었다. 이젠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달빛 길어 올리기'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하고, 전주시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돈을 댄다. 제작비는 20억원 미만이다. 임 감독은 "한지의 우수성을 앞세운 관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다. 한지에 미쳐가는 한 공무원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예전 (내가 만든) 100편의 영화가 준 느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며 "촬영도 필름이 아닌 디지털을 택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촬영을 위해 그는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을 함께 빚어냈던 정일성 촬영감독의 손도 놓았다.
출연진 구성만으로도 '달빛 길어 올리기'는 임 감독에게 뜻 깊다. "저 연기자랑 영화 한번 못하고 인생 끝나겠네"라고 안타까워했다는 박중훈과 첫 만남을 갖는다. 자신의 작품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며 월드스타의 자리에 끌어올린 강수연과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이후 20년 만에 호흡을 맞춘다. 박중훈과 강수연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이후 22년 만에 함께 연기한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중훈은 "'태백산맥'의 염상진 역할을 제안 받았으나 출연하지 못해 두고두고 아쉬움이 컸다"며 "한지라는 아주 근사한 소재의 영화라 더욱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강수연은 "제 인생을 결정한 거나 마찬가지인 작품의 감독님이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며 "진심으로 데뷔작이란 마음으로 연기할 각오"라고 밝혔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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