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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검찰 수사(搜査)에 관한 수사(修辭)

입력
2009.12.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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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호 검찰이 돛을 올린 지 100일이 지났다. 평가는 이르지만 출발은 나쁘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로 흔들렸던 조직은 안정을 찾았다. 부정부패 수사도 재개됐다. 각종 인허가 비리, 기업 비리, 지역 토착 비리 수사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압박 수사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가동 중이다. 검찰이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다는 것은 조직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남은 것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수사의 정도를 걷는 일뿐이다.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검찰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100일은 기력을 회복한 검찰이 쾌속 항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김 총장은 기적을 울려야 할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평소 다변이지만 취임 100일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사양했다.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김 총장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컨대 검찰 앞에 놓인 고난도의 시험지 때문일 것이다. 시험문제는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로와 효성 비자금 의혹 사건이다. 권력 실세에 대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유임 로비 의혹 등 안 국장의 폭로 내용은 사실일 경우 메가톤급이다. 하지만 일방의 주장이라는 한계가 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한 전 청장은 미국에서 진실 공방만 벌이며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야당은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수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효성 비자금 사건도 실체 규명에 상당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부담이다.

검찰은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워 풀어봐야 틀릴 게 뻔하니까 문제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인다. 두 사건 모두 권력 핵심과 닿아 있다 보니 검찰이 더디게 움직일수록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반 사건처럼 다룰 수 없다. 폭로 내용이 모두 범죄 혐의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다. 안 국장은 국세청 주요 보직을 거치며 고급 정보를 접했던 인물이다. 수사를 한다 해도 사건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원하는 수준의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야당의 파상적 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간신히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던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그런 고민 때문인지 검찰은 안 국장 폭로 파문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진 않을 것이다. 물 위의 오리처럼 태연해 보여도 물 밑에선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 눈에는 오리의 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답변을 통해 안 국장 폭로 파문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대신 전했다. 한 전 청장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에 대해 이 장관은 "구속 사안이 아니어서 어렵다" "범죄 단서가 발견되면 하겠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답변일 수 있지만 확실히 수사에 부정적인 수사(修辭)다. 그림 로비, 유임 로비 의혹의 정점인 한 전 청장을 강제 귀국시킬 뜻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가급적 권력층과 연관된 수사는 피하려는 의사로도 해석된다. "가능한지 검토하겠다"거나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면 최소한 수사 의지 자체를 의심받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의지 담은 修辭로 신뢰 얻어야

의혹 증폭 단계에서 수사를 할지 말지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인 것처럼 비치게 하는 발언 또한 적절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수사에 관한 잘못된 수사(修辭)는 수사결과에 대한 오도된 평가를 내리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과 검찰 사이의 간극을 더 벌어지게 한다.

첩보만으로도 관련자를 소환하고 각종 기록을 조사하는 곳이 검찰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의혹에 대해 비록 원칙론적 수준일망정 국민들이 검찰의 수사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닐까.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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