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을 웃게 하라, 그래야 보험도 웃는다
위기 이후 재도약을 향한 발걸음은 보험도 예외는 아니다. 연속 기획시리즈 '다시 금융이다'를 연재하고 있는 한국일보는 은행(1부)에 이어 2부로, 보험산업의 당면 과제와 향후 해법을 3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미국의 AIG, 독일의 알리안츠, 프랑스의 악사, 네덜란드의 ING….
우리에게 익숙한 글로벌 초대형 금융그룹 가운데는 보험을 주력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성공 배경에는 선진화된 경영기법이나 공격적 해외진출 같은 요소도 있지만, '고령화 프리미엄'를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 꼽힌다.
1990년대부터 고령화로 접어든 선진국에서, 이 보험사들은 길어진 수명에 대비하려는 고객들의 장기 자산투자수요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은행 증권을 능가하는 최대금융기관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장수 리스크'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별다른 준비 없이 오래만 사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현재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수준. 젊은 이보다 노인이 더 많아질 날도 멀지 않았다. '돈 없는' 노인은 이제 개인적 불행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민연금이면 충분할 것처럼 선전하던 정부 역시 이제는 국민들에게 노후를 위한 '3층 보장구조'를 갖출 것을 권하고 있다.
▦최소 생활비로서의 국민연금 ▦평균적인 생활을 위한 퇴직연금 ▦여유로운 노후를 위한 개인연금이 그것이다. 평범한 노후 생활에만 평소 연봉의 30배가 필요하다는 '위협'까지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최근 성장한계에 부딪친 국내 보험산업도 고령화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향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장수 리스크와 이에 맞는 금융상품 수요를 보험이 선점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래 보험은 퇴직금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내년 의무도입이 강제화되면서 급팽창 중인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험은 은행, 증권과의 무한 경쟁 속에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은행과 엇비슷했던 시장 점유율은 올 9월말 현재 52.5%(은행)와 35%(보험)까지 벌어졌다. 은행이 광범위한 영업망과 기존고객을 무기로 덩치를 키운다면, 증권은 고수익률을 약속하며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
3층 보장구조의 마지막 단계인 개인연금도 이 같은 사정에 비춰보면 무궁무진한 시장이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미국과 영국의 연금소득을 통한 소득대체율(은퇴 전 대비 은퇴 후 소득의 비율)은 70~80%. 이 가운데 개인연금이 40%나 차지하지만 그나마 40% 수준인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에는 개인연금의 기여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보생명 박진호 퇴직연금사업본부장은 "개인연금은 3층 보장구조 가운데 가장 먼저(94년) 도입됐지만 아직 가입률은 20%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보험권도 본연의 강점을 되살려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수요가 커지는 '실버금융'에 관한 한, 보험은 은행 증권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비교우위를 가졌으며, 이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타 금융권과 차별화된 보험의 최대 강점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산운용이다. 종신보험처럼 20~30년 짜리 장기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자산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
보험연구원 오영수 정책연구실장은 "은행, 증권은 당장 고수익을 선전하지만 이번 금융위기처럼 예기치 못한 위기에 강한 것은 결국 보험사"라며 "연금보험 같은 장기 상품에 가장 적합한 금융사 역시 보험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점은 설계사 조직으로 대표되는 '인생 밀착형' 상담 서비스. 단순 재테크를 넘어 고객의 인생 흐름까지 감안한 종합상담에는 따라잡기 어려운 노하우가 있다.
또 질병ㆍ상해 보험 등 고령화와 연관된 다른 보험상품도 연금보험과 함께 취급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할인된 보험료를 제시할 수도 있다.
오 실장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다는 약점도 향후 자산운용을 아웃소싱하거나 보험지주사 형태로 전환할 경우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전문가 제언/ "위기에 강한 재테크 보험의 장점 알려야"
"보험권의 실버(고령화)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험 본연의 장점을 소비자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 불안한 노후 대비란 결국 우발적 사고를 당해도 안정적인 목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적립금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약속하는 것은 보험 뿐이다.
파생상품 투자로 외도한 AIG는 망했지만, 다른 보험사는 이번 위기에도 오히려 성장했다. '보험은 위기에 강하다'는 장점도 알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 역시 '고수익=고위험'이란 측면에서 안정성을 강조하며 소비자를 설득해 나가야 한다. 장기상품에는 걸맞은 신뢰도가 중요한 만큼 평소 불완전판매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이진면 보험연구원 동향분석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