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 통권 60호(2009년 겨울호)가 1일 발간됐다. 1992년 여름 창간호를 낸 지 17년 만이다.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든 문화적 지향 차원에서든, '진보'의 범주에 드는 매체로서 이례적 장수다. 이 계간지 지면을 텃밭 삼아 담론의 씨를 뿌려온 학자들은 이날 서강대에서 조촐한 자축 심포지엄도 열었다.
'문화/과학'은 정치와 경제 체제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붕괴하던 1990년대, 진보적 사유의 대상을 문화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를 느낀 문학ㆍ미학 전공자들에 의해 창간됐다. 현재 발행인과 편집인은 각각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주요 필자들이 원고료를 반납하는 노력 속에 국가 지원에 기대지 않고도 지령(誌齡)을 거르지 않았다.
제호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과학'은 과학적 문화론을 표방한다.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으레 발견되는 이상주의적인 태도와 거리가 있다. 세계의 거대 구조뿐 아니라 언어, 욕망, 육체, 공간 등을 화두로 집어 들었고 코뮌주의, 생태문화 네트워크, 통섭 같은 흐름을 앞장서 공론화했다. 진보 운동을 추동하기보다 사회의 작동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대중의 심리 구조를 해석하는 것이 '문화/과학'의 기획과 편집의 골간이다.
1일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는 '즐거운 혁명과 주체형성'. 주최측은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위기를 맞아 배제와 파괴가 양산되고 있다"며 "대중이 생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혁명적 태도가 필요한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은 당위의 수준을 넘어서는 '즐거운 혁명'"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심포지엄에서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가 '즐거운 과학기술의 달콤한 유혹',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문화적 다중의 출현과 대안문화행동',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회상과 혁명'에 대해 발표했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와 심광현 교수도 각각 '구성과 연대의 정치학',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교육적 실험'을 주제로 발표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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