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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흰 가운' 의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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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흰 가운' 의사가 아니었다

입력
2009.12.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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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명 병원 산부인과 수술실. 담당 전문의가 메스를 들고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 뒤 수술실을 나가면, 산모의 배를 봉합하는 등 나머지 뒤처리는 의료진 A(28)씨가 맡는다. 수술실에 함께 들어온 다른 3명의 간호사와 달리, 흰 가운을 입은 A씨는 얼핏 레지던트(전공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간호사 출신으로 의사 자격증이 없다. 이 병원 산부인과부에서 간호사로 3년 근무했던 그는 6개월 정도 교육을 받은 후 3년 전부터 수술실에 투입됐다. 병원측은 A씨를 '수술PA'(Physician Assistantㆍ의사보조)라고 부른다.

서울 S대학병원 흉부외과에도 '수술PA'가 6명 있다. 이들 역시 수술에 참가해 주사를 놓거나 환자의 환부를 잡아 늘이고 과다출혈이 발생하면 피를 빨아들이는 일도 한다. 수술이 끝나면 꿰매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 병원에는 환자를 예진하고 입원중인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는 등 의사의 '진단'을 돕는 '병실 PA'도 6명 있는데, PA를 관리하기 위해 올해 7월 'PA파트장'이라는 직책도 처음 생겼다. 이들 역시 흰 가운을 입고 있어 의사와 구별이 되지 않지만 의사 자격증은 없다.

간호사가 수술 과정에서 환자 몸에 직접 손을 대며, 환부를 바늘과 실로 꿰매는 일을 할 수 있을까. A씨는 "당연히 불법이죠"라며 "우리로서도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어서 정체성 혼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모든 대학병원들이 간호사 출신 PA를 공공연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병원, 사립종합병원은 물론, 국공립 대학병원들까지 수술과 진단 등 의사 역할 일부를 'PA'라는 이름으로 간호사 출신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PA는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 의사 자격증도 없이 사실상 의료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불법이다. 특히 정해진 교육과정이나 자격조건이 전혀 없어 비숙련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PA는 당초 전공의의 몫이었으나 수년 전부터 외과계열이 인기가 떨어져 지원자가 줄어들자 일선 병원들이 모자라는 일손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생겼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150병상 이상 병원에서 PA로 활동하는 인원은 2008년 798명으로 1년 전보다 180명 가까이 늘었다. 특히 전공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흉부외과(138명) 정형외과(113명) 등 외과계열이 67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PA는 대부분 간호사 출신이지만, 일반 간호사들의 업무와는 엄연히 다르다. 수술실 간호사의 역할은 수술도구 전달과 소독 등으로 한정돼 있지만, PA는 이를 넘어서 환자의 환부를 잡고 자르거나 실로 꿰매며, 의사의 진단 행위에 속하는 예진이나 회진도 한다. 김선욱 의료전문 변호사는 "의사가 감독을 했다고 해도 의사 자격증이 없는 PA가 메스와 가위를 들고 환부에 손대거나 예진하는 경우 의사와 PA 모두 부정의료업자로 최대 면허취소까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들이 개인 필요에 따라 PA를 주먹구구식으로 뽑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의료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S대학병원의 채용공고에 따르면 이 병원은 간호조무사, 응급치료사, 의무기록사, 심지어 일반인(고졸이상)까지도 PA로 뽑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개인비서를 채용하듯이 별 기준 없이 PA를 뽑는다"며 "워낙 권위가 높은 노교수들이 하는 일이라 병원에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아예 의무기록관리지침 등에 의료법에도 없는 PA에 대해 "소속부서장과 진료담당교수의 감독 하에 제한적 범위에서 의사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버젓이 명시해놓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PA에 대한 제도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해 관계가 엇갈려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대한외과학회가 지난달 12일 '외과간호사의 역할'이란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현행 전문간호사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PA 과정을 독립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사정이 이렇지만 관할부처인 보건복지부는 "PA는 의료계가 현실적인 이유가 있어 만든 제도여서 우리가 직접 나서기 어렵다"며 불법 행위를 방조하고 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강성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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