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일제가 가장 가혹하게 통치했던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친일행위가 확인된 인사 704명을 27일 추가로 공개했다. 이로써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발표된 301명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 발표됐다.
진상규명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4부, 25권, 2만1,000여쪽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보고서)를 발간하고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이로써 정부 차원의 일제강점기 과거사 정리작업은 광복 64년 만에 일단락됐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 설립된 진상규명위는 1904년 러ㆍ일전쟁 발발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일제강점기를 3기로 나눠 이 기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 1,05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왔다.
추가 공개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김성수 보성전문학교장,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 방응모 조광 편집인, 백낙준 연희대학 총장, 이상협 매일신보 발행인, 시인 최남선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소설가 이광수, 화가 김기창, 작곡가 현제명 등이 포함됐다. 분야별로는 중추원이 244명으로 가장 많았고, 귀족이 139명으로 뒤를 이었다. 관료 118명, 학술ㆍ문예 82명, 경찰 72명, 정치ㆍ사회단체 51명, 군인 34명, 언론 33명, 사법 32명 등이었다. 특히 김성수 등 독립유공자로 훈포장을 받은 5명이 포함됐다. 국가보훈처는 이들의 친일행위 자료를 검토한 뒤 서훈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언론인 장지연, 장면 전 국무총리, 음악가 홍난파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은 제외됐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은 한일합병 후 친일적인 글을 많이 썼지만 반민족행위로 결정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 따라 제외됐다. 초기에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정식으로 상정되지 않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론의 초점이 되는 인물이어서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했으나 신문 등 1차 사료가 확보되지 않아 유보했다. 성대경 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혈서를 작성했다는 만주신문 기사도 사전 발간 직전에 알게 돼 다시 거론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홍난파는 친일행위 조사결과 통지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후손들의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제외됐다.
친일인사 판단기준이 달랐던 것도 이유가 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에 협력한 행위를 한 자'를 포괄적으로 친일행위자로 규정한 반면, 진상규명위는 특별법에 따라 '일제에 협력해 우리 민족에 해를 끼친 행위'라는 좀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사전(4,389명)보다 훨씬 적은 1,005명만 보고서에 실렸다.
한편 보고서에 실린 친일인사 후손들이 결정취소 청구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반발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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