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57명을 낳은 필리핀 최악의 정치테러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악할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건배후로 지목된 마긴다나오주 주지사 아들인 안달 암파투안 주니어가 현장에서 야만의 극치를 달린 테러를 지휘했으며, 암파투안 밑에서 일하는 민병대원 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 등 공권력까지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는 27일 "암파투안 시 모든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으며 군인들도 '킬링 필드'에 참여했다"며 "이들은 종종 정치인(주지사)의 사적인 군대로 이용된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필리핀 법무부는 학살에 참여한 용의자로부터 암파투안이 테러를 미리 계획하고 학살을 지시했으며 자신도 직접 살해에 가담했다는 양심증언을 확보했다고 AFP는 이날 보도했다.
이들이 23일 벌인 만행은 더 충격적이다. 참수 등 시신훼손은 물론이고 여성 희생자 22명은 모두 생식기에 총을 맞은 상태로 확인됐다. 아그네스 데바나데라 필리핀 법무장관은 이날 현지방송에 "너무 끔찍하다. 살해되기 전에 나쁜 짓을 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성폭행 후 증거인멸 목적으로 생식기를 훼손했다는 뜻이다. 그는 또 암파투안이"증인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라는 암파투안의 지시에 따라 사고현장을 지나가던 차량 탑승자 15명이 살해됐다고 덧붙였다. 원래 계획했던 테러 대상과 무관한 시민들까지 몰살한 것이다.
핵심 용의자 암파투안이 보여준 행태는 인면수심 그 자체다. 사건 발생 후 3일 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는 26일 자수하는 과정에서 헬기를 타고 공항 VIP라운지를 통해 걸어 나왔다. 법무장관 및 수사관들은 그를 수시간 기다렸으며 수갑도 채우지 않고 이송했다. 데일리 인콰이어러는 "그는 얼굴도 가리지 않고 당당히 서서 결백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야만적 테러에 대응하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자세는 후안무치하다. 암파투안이 자수한 뒤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로요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암파투안 가문과 관계를 끊지 않겠다"고 말했다. 테러를 저지른 것과 동맹 관계는 별개라는 이유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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