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와 감동의 인도영화 <블랙> 은 아름다운'기회'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남자주인공 사하이는 태어날 때부터 눈과 귀와 입이 모두 닫혀 그야말로 '어둠(블랙)'에 갇힌 여자아이 미셸의 가정교사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미셸에게 글과 사물의 느낌을 통해 세상의 빛을 찾아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셸의 대학입학 도전에 어이없어 하는 학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행을 베풀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다행히 학장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나중에 점자로 교재까지 만들어 준다. 블랙>
▦6개월 전이다. 지하철 안에서 '앵벌이'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구슬픈 음악과 함께 말을 못하는 할아버지가 앞장서고, 앞이 보이지 않은 할머니가 그의 허리춤을 붙잡고 통로를 걸어오고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잠깐 망설였다. 아깝다는 생각, 혹시 장애를 흉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그러는 사이 그들은 다음 칸으로 가버렸다. 아차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쫓았지만, 그들은 전동차에서 내렸고 문은 닫혔다. "다음에는 꼭"하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기회'는 사라졌다.
▦그리스에는 아주 특이한 모습의 동상이 있다. 보통 사람과 반대로 앞머리는 길지만,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다. 그리고 천사와 달리 어깨가 아닌 양 발에 날개가 달려 있다. 이 우스꽝스런 동상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뒷머리가 없는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내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바로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기회는 그 동상처럼 다가올 때는 느리고 잡기도 쉽지만, 일단 지나치면 쏜살같고 미끄러워 다시 잡을 수 없다. 기회를 새에 비유한 도스토예프스키도"날아간 후에 꼬리를 잡으려 해도 소용 없다"고 했다. 남을 돕는 기회라고 다르지 않다. 해마다 이맘때면 거리에는'기회'의 동상들이 등장한다. 12월 1일, 전국 76개 지역 300여 곳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모금활동을 시작한다. 얼마나 좋은가. 일부러 기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24일 동안 기다려주기까지 하니.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고 눈 앞에 보일 때 잡아야 한다. 자선냄비라는 기회 역시 한번 지나가면 1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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