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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 돈에 억눌린 세상…그래도 난 사랑을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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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 돈에 억눌린 세상…그래도 난 사랑을 믿고 싶어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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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지망생과 사랑에 빠진 소설가… 억압으로부터 자유 꿈꾸는 청춘들

단편 '영이'로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한 김사과(25)씨는 그동안 젊은이들을 억압하는 속물적인 시스템에 예기치 않은 폭력으로 대항하는 조숙한 아이들을 창조해냄으로써 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주목을 받아왔다.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교사에게 살의를 품다가 그의 우연한 죽음에 마냥 기뻐하는 고등학생('준희'), 엄청난 치료비가 드는 병을 앓는 동생을 살해하는 초등학생('동생'), 우정이 파탄나자 자신의 친구를 난자하는 여고생(장편 <미나> ) 등 김씨가 그려낸 아이들의 세계는 "아무런 억압 없는 즉각적인 욕망충족의 세계'(문학평론가 조연정)였다.

김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 (문학동네 발행)는 물신주의, 쾌락주의를 조장하는 기존 제도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중산층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이 이번에 그 압력에 대항하는 수단은 자기파괴적인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다. "20대가 가기 전에 청춘, 사랑, 예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 소설은 돈 없는 어린애들이 사랑하고 노는 전형적인 청춘연애소설"이라고 작가 김씨는 말한다.

김수영의 유명한 시 '풀'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제목은 그러나 시와는 무관하다. '풀'은 등단한 지 3년이 된 소설가이지만 자신의 문학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화자 '나'가 사랑에 빠지는 화가 지망생인 남자 주인공. 이들의 사랑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시대착오적"이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 일을 도우며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졌던 풀이지만 나와 동거에 들어간 뒤로는 그것을 그만둔다. 나는 풀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 섹스, 춤에 취해 있을 뿐 돈이 필요하면 돈 많은 여동생에게서 뜯어내고, 물건이 필요하면 훔쳐 달아나는 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풀은 화자가 꿈꾸고 있는 삶의 방식, 그 욕망의 투사물이다. "온 세계가 돈에 짓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었다"고 괴로워하는 화자는 이런 연애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임을 예감하지만 풀을 향해 "너는 절대로 지면 안돼"라고 절규한다.

세상에 대한 환멸, 자기 방기, 세계와 자아의 분열 등의 주제는 김씨가 즐겨 읽는 1950~60년대 미국 비트세대 작가들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중산층 가정에서 일탈하고 방황하는 젊은이에 대한 김씨의 소설적 집착은 이번 작품에서도 맥을 잇고 있는 셈. "미국의 히피나 비트세대, 우리의 서태지세대도 모두 계급적 토대는 중산층이었다. 그들의 일탈은 하나의 구조이고 그런 점에서 내 소설은 보편성이 있다."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까지 X 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 모두 쉽게 용서하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 위악적인 어투나 "야, 언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병신 맞잖아. XX" "뭐?" "못들었냐. XX이라고"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던지는 비속어들은 확실히 튄다. 그것은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속물근성을 폭로하려는 김씨의 의도된 글쓰기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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