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수명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지가 20년이 넘었네요. 그런데 이제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군요."
박상철(60)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이 누구나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100세인론'으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가 강연회 강사로 나서면 객석은 만원이 되고, TV방송에 출연하면 시청자 문의가 쇄도한다. 올해 초 나온 그의 저서 <100세인 이야기>는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오래 사는 법, 건강하게 사는 법을 다루면 어지간하면 주목 받는다. 장수와 건강은 인간의 원초적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그가 다르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는 다른 걸까.
27일 오전 서울 대학로의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서가를 뒤적이며 그는 인간 노화와 장수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는 의학도로서 평생에 걸친 연구와 과학적 성과가 뒷받침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주장이 상식을 뛰어넘는 것들임에도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왜 주목 받는지 짐작됐다. 그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고 생화학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화학이란 생물체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화학 반응과 물질 대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어떻게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걸까. 그는 '노화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상식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과학 분야 권위지 <네이처> 에 '늙은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면역력이 더 강하다'는 요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노화가 생명체의 생존 연장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네이처>
"실험을 했죠.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에 각각 강도 높은 자외선을 방사했더니 늙은 세포는 살아남고, 젊은 세포는 죽는 거예요. 또, 젊은 쥐와 늙은 쥐에 독성 물질을 주입했는데 젊은 쥐의 간 손상이 더 심각했습니다. 몇 번을 해도 똑같은 거예요."
그렇다면 왜 인간은 결국 죽는가. 이에 대해 그는 "노화한 생명체 세포의 모든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아니라 단백질 한 두 개가 고장 나서 그런 것"이라며 "문제가 되는 단백질 한 두 개에 관련된 논문을 내년 중반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이쯤 되니 인터뷰를 곧바로 끝내기 어려웠다. 대학로의 역사를 간직한 인근 학림다방과 진아춘 자장면집으로 옮겨 인터뷰가 오후까지 이어졌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가 20여년 연구해온 '100세인론'의 요지는 운동ㆍ영양ㆍ관계ㆍ참여의 4대 명제로 요약된다.
적당하게 몸의 활동을 유지하고, 적절하게 먹어야 하며, 배우자ㆍ자녀ㆍ이웃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봉사활동이든 뭐든 참여해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것이다. 언뜻 단순해보이는 이 결론은 그가 한국의 장수촌과 고령자를 발로 뛰며 직접 면담해 얻어낸 결론이다.
"호남 지역의 어느 할머니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지내는데도 건강하게 100세를 넘겨 장수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자기가 먹지 않는 과자나 빵을 방 윗목에 수북이 쌓아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동네 아이들이 과자도 먹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할머니 집에 자주 들르더군요."
그는 특히 관계와 참여의 문제는 고령자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보고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최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산하에 인생대학과 장수과학최고지도자과정을 개설했다. 박 소장이 창안한 '장수춤'을 배울 수 있는 인생대학은 모집 공고 다음날 정원 초과를 빚을 정도로 인기다.
그는 '100세인론'을 불쑥 제기한 것이 아니다.
"경제 선진국 미국에서 흑백 차별, 성 차별 문제가 해결되자 1980년 후반에 연령 차별이 마지막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령화 문제가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미국, 일본의 관련 기관과 연구소를 찾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했다. 그는 "당시'늙으면 인생 다 끝나는 건데 뭐 그런 걸 연구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그의 주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4대 명제에 충실하다. 그는 올해초 승용차를 팔고 버스로 경기 판교의 자택에서 대학로 연구실까지 출퇴근을 한다. 종로2가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을 적당한 운동으로 여긴다. 가능하면 강연회에 참석하고 기고를 하는 것은 관계와 참여의 명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제 한국인은 50대에 은퇴하고 나서의 50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전 생애가 평가 받을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관계와 참여의 욕구를 해결할 것인지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노년의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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