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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피와 천둥의 시대' 저 꿈의 땅, 서부에 물든 '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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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피와 천둥의 시대' 저 꿈의 땅, 서부에 물든 '피의 역사'

입력
2009.11.2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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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튼 사이즈 지음ㆍ홍한별 옮김/갈라파고스 발행ㆍ704쪽ㆍ2만8,000원

유럽인의 이주와 정착을 기점으로 하는 아메리카사는 무척 빈약하다. 올려 잡아 겨우 16세기에 시작하는 이 역사엔, 태고의 전설도 빈빈한 문화의 가닥도 없다. 그래도 구대륙의 역사와 비교할 때 빠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시산혈해(屍山血海)의 풍경. 콜럼버스가 바하마 제도의 작은 섬에 발을 디딘 후, 유럽인들은 수백 년에 걸쳐 해가 지는 쪽을 향해 뻗어갔는데, 그들의 발 밑엔 언제나 인디언의 피가 강을 이뤄 흘렀다.

<피와 천둥의 역사> 는 미국의 서부 개척이 막바지에 다다른 아메리카대륙의 19세기를 기록한 책이다. 뒤집어 말하면 멸망해가는 인디언의 피의 세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 햄튼 사이즈는 작가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2006년 발간한 이 책은 그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 준 출세작이 됐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수많은 매체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제작 중이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과 부족과 전투가 모두 실제. 페이지마다 예닐곱 개씩 되는 각주는 책에 실린 사실의 근거를 명토박고 있다. 그럼에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의 줄기를 가진 소설로 읽히는데, 아마 그것이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인 듯하다. 인류학적 민속지의 건조한 조각, 또는 전사(戰史)의 편린에 불과하던 사실들이 얽혀 맥동을 지닌 대서사시로 거듭났다. 저자의 뛰어난 직조력은, 마치 그 모든 사실이 본래부터 이 책의 밑감으로 채록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책의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카슨(1809~1868)이라는 남자와 서부 인디언의 한 갈래인 나바호(Nabajo)족. 순진한 덫 사냥꾼이던 카슨이 서부 시대의 영웅, 곧 인디언 학살의 주범이 되어가는 과정과 나바호족이 파멸해가는 과정이 처절토록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본래 멕시코의 땅이었던 광대한 서부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이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과정, 남북전쟁의 굵직한 장면과 비사들도 이 피비린내 나는 태피스트리의 색실로 동원된다.

책은 세 장으로 나뉜다. 첫 부분 '새로운 사람들'은 공존과 약탈이 섞여 서로 구분하기 힘들던 19세기 초의 서부를 그리고 있다. 거친 대지에서 나고 자란 사내들은 마치 사막을 시원으로 하는 회귀어처럼 황막한 서쪽을 향해 간다. 이들은 그곳에 뿌리를 둔 인디언과 조우하는데, 그 만남은 사냥물과 술을 교환하기도 하고 상대의 머릿가죽을 벗기기도 하는 혼란한 것으로 묘사된다.

2장 '분열된 나라'에서 저자는 1846년 멕시코 침략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피의 서진(西進)을 본격적으로 그린다. 3장 '살인자 괴물의 재림'은 숫제 추깃물에 젖어 있는 것처럼 핍진하다.

저자는 다만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행간에서는 서부 개척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선연히 읽힌다. "카슨은 결코 인디언을 미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겐 추상적인 인종주의적 혐오감도 없었다…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혼란과 이율배반으로 뒤범벅된, 피와 천둥의 시대 그 자체였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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