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제임스 지음ㆍ윤정숙 옮김/알마 발행ㆍ568쪽ㆍ2만5,000원
경제적으로는 나아지는데 무력감과 스트레스는 더 심해진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4년 조사에서 나이지리아인의 6분의 1이 불안이나 우울증 등 정서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미국인은 4분의 1이 비슷한 증세를 호소한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임상소아심리학자 출신의 영국 작가 올리버 제임스는 풍요로워질수록 불안해지는 이런 현상을 어플루엔자(affluenza)라고 부른다. 어플루언스(affluenceㆍ풍요)와 인플루엔자(influenzaㆍ유행성 감기)의 합성어다.
이 책 <어플루엔자> 는 바로 그 '부자병'에 대한 보고서이자 정신분석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병의 증세는 우울, 불안, 무력감, 피해망상 등 다양하다. 이런 증상은 개성과 정체성을 잃은 채 거대 산업 구조에 편입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개인은 그래서 우울하고 불안하고 공허하고 외로워질수록 소비에 탐닉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해서 해소되지는 않는다. 어플루엔자>
저자가 지목하는 병의 발원지는 미국의 뉴욕이다. 월가의 탐욕스런 이기적 자본주의가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탄생시켰고 그것이 강박적이고 허세적이며 경쟁적인 영어권 지역을 거쳐 전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어플루엔자 바이러스 확산의 중요 매개는 텔레비전과 광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돈, 명성, 외모 등에 관심을 갖게 하며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그것들이다. 텔레비전과 광고가 다중을 겨냥하고 다중에게 전파된다는 점에서 부자병은 사회병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병의 근원과 확산 정도를 살피기 위해 뉴욕, 시드니, 모스크바, 싱가포르, 코펜하겐, 상하이 등 20여개 도시를 돌며 240명을 인터뷰했다. 가령 그가 뉴욕에서 만난 두 사람_연 소득이 400억원이지만 마약 중독에 빠져있으며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는 주식중개인 샘, 연봉이 그의 1,000분의 1이고 손님들의 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인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민자 출신 택시기사 쳇_은 어플루엔자의 실체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는 결국 중요한 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스로 목표와 동기를 세우고, 광고가 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것을 소비하며, 스스로의 가치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라는 제언이 바로 그의 어플루엔자 백신이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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