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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1>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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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11>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전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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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인 정치가 김부식이 펴낸 <삼국사기> (1145)는 고구려ㆍ신라ㆍ백제 등 세 나라 역사를 50권의 기전체(紀傳體)로 엮은 역사책이다. 기전체란 제왕의 전기를 본기(本紀)로 하고, 역사인물을 열전(列傳)으로 다루는 역사 쓰기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에서 유래하여 , <한서> 에서 확립된 중국의 정사(正史) 기술 방식이다.

<삼국사기> 는 이 체제를 따라 모두 50권 가운데 제41~50권까지 10권을 열전으로 채웠다. 이 곳에 개인 전기로 입전(立傳)된 역사 인물은 51개 전기에 80여명으로, 이것은 이 역사책 전체의 5분의 1이 넘는 분량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찬하면서, 특히 열전을 중시한 역사기술의 뜻을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더구나 이 열전 10권 가운데, 제41~43권까지 3권을 '김유신전(金庾信傳)'에 배당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 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사마천의 <사기> 가 열전의 서두를 백이ㆍ숙제(伯夷ㆍ叔齊)로 장식한 유교주의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 특징이다.

김유신(595~673)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앞장서서 주도한 군인이었다. 그리고 이 열전에 입전한 인물의 절반이 넘는 34명이 신라 통일 시대인 7세기 인물이며, 37명이 군인이고, 21명이 이 때 순국한 사람이다.

이것은 이 역사책 전체에 풍기는 신라 중심, 유교 중심의 성격과 함께, 고구려 신라 백제 세 나라가 모두 국가불교 시대였던 역사를 다루면서 스님 한 사람도 입전하지 않은 사실과 크게 대비되는 성격이다.

심지어는 신라 통일시대와 관련해서 도저히 뺄 수 없는 원효(元曉)의 이름까지 이 열전이 과감히 빼버렸다는 것은 <삼국유사> 가 고승전의 성격을 가졌다는 것과 크게 구별되는 유교적 성격이다.

이 '김유신전'은 유신의 현손 장청(長淸)이 지었다는 <행록(行錄)> 10권을 바탕으로 삼았고, 이 행록은 고려 중기까지 널리 읽히는 독서물이었다고 김부식은 썼다. 그러나 이 전기를 구성한 두드러진 특징은 김유신의 생애와 나라의 역사를 대위법적으로 중첩시킨 데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김유신의 삶과 신라통일의 위업을 함께 드높이기에 모두 타당한 구성법일 터이다. 그것은 '논찬(論贊)'의 머리말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대개 신라가 김유신을 대한 것을 보면 친근하여 틈을 주지 않았고, 일을 맡기면 두 번 간섭하지 않았다(觀夫新羅之待庾信也.親近而無間,委任而不貳)."

이 글에서는 김유신의 인격이 신라 나라와 동격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김유신의 사람됨을 드러내는 일화는 유신이 상장군으로 백제를 쳤을 때 크게 이기고 돌아와 임금을 뵙기도 전에 다시 출정 명령을 받았다는 데서 두드러졌다.

그는 집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다시 출정하였는데, 집을 50걸음 쯤 지나쳐 말을 세우고, 사람을 집으로 보내어 물을 떠 오게 했다. 그리고 "집의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 맛이 있구나" 라고 말하며 그냥 떠났다. 이를 본 군사들이 본을 보고 모두 그대로 다시 출정하여 백제를 막았다는 것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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