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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이념 갈등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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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의 대화] 이념 갈등의 경계선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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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보수와 진보의 대화를 모색하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입장의 차이가 적지 않았지만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여지도 많았다. 현실을 직시하면 과거의 이념적 당파성에 근거한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이념을 가르는 대표적인 기준은 미국과 북한에 대한 태도였다. 보수진영에서는 한국 사회의 '진보'가 반미친북이므로 '좌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미친북을 진보의 정체성으로 삼는 이들은 의미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없다. 보수주의자들도 곧 이런 단순한 구분이 낡은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낡은 친북ㆍ반북 구분

미국이 단독으로 헤게모니를 행사하던 국제 질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 더 많은 발언권을 확보할 것이 틀림없다. 이에 따라 하토야마 일본 총리는 일본의 '아시아 복귀'를 선언했으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도쿄에서 아시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미국이 방향을 지시하면 다른 나라들은 추종하는 방식의 '평화'는 이제 존재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가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당위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한미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중 관계를 증진시키는 방향에는 보수와 진보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지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관점은 아직도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현실의 대책으로 한발 더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사회주의가 역사적 진보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으며, 건국 당시 북한의 자립성도 과장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실패'도 분명한 사실이다. 핵실험이 한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며, 중국과의 우호관계조차 동요하게 하는 것도 현실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한계가 있었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분단체제라는 비협력 게임을 평화와 통일의 협력게임 구조로 전환하고자 하는 최초의 정책 시도였다. 물론 이러한 전환 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최근에는 역행의 과정으로 가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 체제의 성격이 포용과 협력게임 구조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평화는 압박에 의해 잠정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통일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러나 포용정책은 틀렸고 압박정책은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강압적 평화는 부분적 충돌을 가져오고 전면적 충돌로 이행할 수도 있다. 전쟁은 핵 위협에 비할 수 없이 위험한 것이다. 붕괴라는 것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질서의 불바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구소련 붕괴를 예로 든다. 실제로 구소련에서 이루어진 상황은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상당히 질서를 갖추어 이루어진 체제이행이었다. 당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급진파 정치가들은 서로 협력하여 이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조차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체제이행의 경제학이 말하는 바는, 급속한 제도의 파괴가 새로운 제도의 형성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 직시해야 간격 좁혀

스스로 체제를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압박에 의해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한반도 분단체제와 같이 뿌리 박힌(embedded) 적대의 심성이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킬지 짐작할 수조차 없다.

친북ㆍ 반북의 구분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정책이 시계추처럼 움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의 기본 방향은 미국과 중국이 지지하는 국제질서로의 점진적 이행, 남북간 타협에 기초한 질서로의 전환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제약조건과 미래에 이를 수 있는 경로에 좀 더 몰두해보면, 진보와 보수의 간격은 훨씬 좁아질 것으로 믿는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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