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 현장을 복원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2006년 12월 4일 '경복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을 시작해 오늘 상량(上樑)하기에 이르렀다."
광화문 복원 상량식이 열린 27일 오후 4시. 제관이 광화문의 내력과 복원 의미를 밝힌 상량문을 읽은 뒤 나무함에 넣어 봉안관을 맡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건넸다.
유 장관과 이건무 문화재청장, 복원 공사의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이 8.5m 길이의 장여(도리를 받치는 나무) 속에 상량문을 봉안하고 줄을 잡아당기자 장여는 허공으로 떠올라 누각 꼭대기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 위로 원통형 마룻대가 올려졌다. 새롭게 태어날 광화문의 골조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상량식은 목조 건축물의 최상부 부재를 올리는 중요한 의식인 만큼, 조선시대 궁궐 전통의례인 '국조오례의'에 따라 엄숙하게 치러졌다. 이날은 1865년 광화문 중건 때 고종이 상량했던 날로부터 꼭 144년이 지난 날이기도 했다. 신 대목장은 "상량식을 했으니 목공사의 80%는 끝났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인 만큼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의 정문으로 지어진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고, 1968년 중건 때는 원래의 위치와 모습을 잃고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그것을 고종 때 모습으로 되살리는 광화문 복원 공사는 지난 3년간 발굴조사와 육축 축조 등을 거쳐 이제 추녀와 서까래 설치, 기와 잇기, 단청 등 마무리 단계를 남겨뒀다. 광화문은 2010년 10월, 가림막을 벗고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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