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 뉴욕까지 가서 또라이 짓."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의 형이자 EBS 영어강사인 이선민씨가 지난 21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해 미니홈피에 올린 시청소감 중 일부다.
그는 "길거리에서 단어 한마디도 못하고 버벅대다 뉴요커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개 무시"한 것에 분개했고, 한국이 "영어 교육비 세계 1위"인 마당에 연예인들이 서툰 영어로 미국에 한식을 알리는 것이 부끄러웠던 듯하다. 시청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거친 언행을 뺀 그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굳이 "세계의 중심 뉴욕"의 마음에 들려고 유창한 영어를 해야 할까.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인기 연예인이지만, 그들은 '무한도전'에서만큼은 '루저들의 도전기'를 수행한다. 봅슬레이부터 벼농사까지, 그들은 계속 무언가에 도전하고, 마음대로 안 되는 현실에 부딪힌다. 그들이 영어를 못하는 건 한식 요리를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고, 그래도 끝까지 덤벼서 작은 결과나마 내는 게 '무한도전'의 재미다.
21일 방송에서도 유재석이 '안 되는 영어'로 몇 명의 미국인을 웃기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재미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뉴욕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무한도전'도 남에게 보여주려고 그들의 세계를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아쉬운 건 평소같지 않은 그들의 '배우는 자세'였다.
매사 예의바른 캐릭터인 유재석을 제외하면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좀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게 뭐 어떠냐"는 식의 당당함을 보여준다. 그게 다소 철없는 것으로 설정된 출연자들의 웃음 코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 그들은 부족한 영어에 대해 자책하고 부끄러워했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미국인이 오히려 "나도 한국말 모르니까 괜찮아요"라고 한 것과 대조적인 태도였다. 우리는 이미 영어를, 그리고 미국 같은 이른바 선진국의 시선을, 사람과 나라의 수준을 가르는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명의 시청소감일 뿐인 이선민씨의 글이 관심을 모은 것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유명인의 형'이자 '유명 영어강사'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은 아닌지. 하지만 우리가 정말 신경 써야 할 건 미국이나 한 '유명 시청자'의 발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얼마나 당당한가 하는 것이다. 뉴요커는 뉴요커이고, 유명인의 형이자 유명 영어강사는 유명인의 형이자 유명 영어강사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이다. 더 얘기할 것 있나?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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