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너는 내 운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너는 내 운명

입력
2009.11.26 23:35
0 0

#장면1: 휴전선이 느슨해지고 수많은 북한주민이 남쪽으로 내려온다. 남한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에게 환영비를 지급하고 임시숙소를 마련해준다. 그 소식을 듣고 점점 더 많은 북한주민이 국경을 넘어온다. 북한 정권은 뒤늦게 개방과 개혁을 시도하지만 통제력을 잃고 결국 무너진다.

#장면2: 체제 붕괴 위기에 처한 북한 강경파나 군부가 중국의 도움을 요청한다. 중국은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에 군대를 파견한다. 결국 북한은 길림성처럼 한민족이 사는 중국의 영토가 된다.

#장면3: 운 좋게도 중국군이 들어올 새 없이 북한정권이 무너져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한다. 남한의 모든 제도가 북한에 그대로 적용된다. 경쟁력이 없는 북한의 거의 모든 산업이 붕괴된다. 주민 대다수가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린다. 수십만,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다. 지하철역마다 북한 노숙자로 넘쳐나고 남산, 무악산, 인왕산과 공원마다 6.25때처럼 움막이 들어선다.

#장면4: 북한 땅을 남한 투기꾼들이 휘젓고 다니고, 통일정부가 추진하는 남한공장 유치는 도로, 철도, 전기 등 사회간접자본의 미비로 지지부진하다. 통일 후 비로소 시작한 기반시설 투자는 물먹는 하마처럼 천문학적 비용을 빨아들인다. 실업자들이 거리로 나앉고 북한 주민의 불만은 점점 커져 급기야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장면5: 세수입이 거의 없는 북한 지자체에 대한 정부의 무한 지원, 사회기반시설 정비 및 신설, 실업수당 지급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통일비용 부담은 성장력 저하, 경제 침체, 생산성 후퇴로 이어져 통일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사회가 된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상 장면들이다. 먼저 흡수통일을 이룬 독일의 예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차라리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할까? 요즘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북한과 상관없이 지금처럼 남한만 잘 살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역사의 행보인 통일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통일은 결국 온다. 그것이 우리 한민족의 운명이다.

대다수 서독인들이 통일에 별 관심이 없고 굳이 통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독일은 급변하는 정세에 의해 갑자기 통일이 되었다. 동독 주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잘사는 형제 나라 서독으로의 대거 탈출로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남북한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국경이 느슨해지거나 북한 내부에 변혁이 일어나면 주민들의 대량탈출이 이어지고 정권이 붕괴할 것이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분단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어느 때건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통일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최선이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통일은 축복도, 재앙도 될 수 있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흡수통일이 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제일 좋은 통일준비는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북한 스스로 경제발전을 하고 충분한 사회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남한이 적극 도와야 한다. 북한 살리기가 바로 통일 준비이다. 그렇게 하여 북한 경제규모가 남한과 비슷해진 상황에서 서로의 장점을 합해 대등한 통일을 이뤄야만 통일은 비로소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