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했다. 시댁의 김장은 아직 옛날 방식이 남아 있다.
한 집이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함께 모여서 배춧잎 한 장 한 장에 정성껏 양념을 넣는다. 이른바 김장 품앗이다. 요즘 도시에서 김장 품앗이를 찾아보긴 사실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터. 한 집에 2, 3대는 기본으로 살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식구 수가 많이 줄었다. 수십 포기씩 김장을 담그면 먹을 '입'이 없다. 또 꼭 김장철이 아니더라도 1년 내내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싱싱한 배추를 사시사철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엔 배추를 보통 가을에 심었다. 싹이 나고 2, 3개월이 지나면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 난다. 속이 알맞게 찬다는 얘기다.
배추가 자라는 데 적절한 온도는 18∼21도. 딱 가을 날씨다. 봄에 심으면 속이 덜 찬 채로 자라는 걸 멈추기 때문에 맛도 덜하고 상품 가치도 떨어진다.
요즘엔 봄배추는 물론이고 여름배추(고랭지배추) 겨울배추(월동배추)까지 나온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이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육종 기술이다.
육종은 현재 재배되는 품종보다 더 우수한 품종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농학 기술이다. 육종 덕분에 기온이나 계절 같은 환경 변화에 적응해 자라는 새로운 배추 품종들이 개발됐다.
배추뿐 아니라 무와 고추처럼 김장에 쓰이는 주요 채소의 육종 기술은 한국이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예를 들어 마늘은 육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마늘은 꽃을 피우지 않고 씨(주아)를 땅에 떨어뜨려 번식한다.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교잡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일반적인 육종 기술을 적용할 수 없다. 국내 과학자들은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꽃 피는 마늘을 찾아온 뒤 이를 국산 마늘과 교잡시켜 결국 신품종 마늘을 개발했다.
김장 하고 남은, 절인 배추로 만든 겉절이를 미지근한 물에 살살 씻어 고춧가루를 털어 냈다. 잘게 잘라 김이 솔솔 나는 밥에 얹고 후후 불어 가며 아이의 입안에 넣었다. 우리 아이들 세대는 사시사철 배추가 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자랄 것이다.
꿀처럼 달고 노란 참외도, 형형색색의 상큼한 파프리카도, 바이러스병에 잘 걸리지 않는 콩나물도 원래 그러려니 생각할 것 같다.
올해는 국내 육종 연구를 선도한 우장춘 박사가 사망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한 육종학자는 "신품종이 태어나는 과정은 어머니의 산고와 같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면 우리가 얼마나 육종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꼭 이야기해 줄 생각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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